◎재정·학사운영 무한경쟁 돌입/「특성화」 없이 현실안주땐 도태「5·31교육개혁」은 대학들에게 이제는 스스로 운명을 개척해가야 한다는 과제를 안겨 주었다. 불합리한 제도와 간섭을 탓하며 담합과 눈치보기에 길들여져온 대학들에게 무능력을 감싸줄 어떠한 명분도 핑계도 사라졌기 때문이다. 열심히 노력하는 대학은 대우받고 그렇지 못한 대학은 도태된다는 교과서적 도덕률이 이제야 「학문의 전당」에도 자리잡게 됐다고 할 수 있다.
그러나 시작은 이제부터다. 무엇을 연구할 것인가. 어떤 학생을 기를 것인가. 재정과 학사행정은 또 어떻게 할 것인가. 단속과 굴레에 젖어온 대학은 새로운 자유를 채 만끽하기도 전에 자율과 책임의 막중함을 뼈저리게 절감해야 할 시점에 서있다.
교개위는 대학의 이런 고충을 덜어주기 위해 개혁안이라는 방법을 통해 몇가지 기준을 제시했다. 대학설립 준칙주의, 다전공 복합학문 장려, 단설 전문대학원의 활성화, 예·결산공개 의무화등이다. 하지만 주어진 재료를 어떻게 요리할 것인가는 순전히 각 대학들의 몫이다. 또 제시된 모형이외의 어떤 틀도 「도덕률」에 위배되지 않는한 시행여부는 대학의 고유권한이다.
우선 교개위의 「모범답안」부터 착실히 시행해 나가는 것이 순서이다. 장기적인 발전모델도, 외풍을 견디는 면역성도 출발점은 모범답안에서부터다. 교개위가 강조한 첫번째 답안은 특화된 대학모형을 만들어 달라는 것이다. 「무개성이 개성인 대학」 「천편일률적인 백화점식 대학」에서 탈피해 다양한 대학사회를 구성할수 있는 유기체가 돼달라는 주문이다.
가장 중요한 것이 대학설립의 준칙주의이다. 지금까지는 대학을 설립하기 위해서는 학교설립인가와 학교법인설립인가를 별도로 받아야 했다. 4년제 대학의 경우 총정원 5천명을 기준으로 교지 10만평, 건물 3천평, 교지확보비용을 뺀 재원만도 1천2백억원이 있어야 했다. 그나마도 20여종의 각종 서류심사를 통과하는데 소요되는 3년여의 시간은 필수적인 통과의례였다. 그러나 96학년도부터는 각 대학의 설립목적과 특성에 따라 설립기준 자체가 다양하게 적용된다. 목적에 부합되는 시설과 기준만 충족되면 조그만 대학도 얼마든지 경쟁에 뛰어들수 있고 운영여하에 따라서는 덩치큰 종합대학도 거꾸러뜨릴수 있는 것이다.
문제는 수요자인 학생에게 어떻게 자신의 존재를 인상깊게 알리느냐이다.
단설전문대학원이 좋은 예다. 「산업현장의 허리인력 수급을 위해」라고 교개위가 취지를 밝힌 것처럼 실무와 이론을 겸비한 전문기술인을 육성할수만 있다면 세계화, 정보화의 주역이 될수 있다. 미국의 매사추세츠 종합병원 건강전문연구소나 왕(WANG)연구소가 대표적 모델이다. 거세어지는 교육개방추세에 대처하는 길도 궁극적으로는 특화된 모델개발이다. 「신토불이」가 교육현장에도 적용될수 있다는 뜻이다.
정원자율화는 또다른 지렛대이다. 각 대학은 97학년도부터 학생을 마음대로 뽑을수 있다. 하지만 엄격한 준칙주의하에서 대학은 오히려 있던 학생마저 빼앗길수 있다. 연구실적, 경영실적에 따라 정부의 교수 연구비와 학교지원금이 책정되기 때문에 과거처럼 뻥튀기된 문어발식 대학경영으로는 망하기 십상이다. 예·결산 공개를 의무화한 것도 정원자율에 따른 막중한 사회적 책임을 엄중하게 물은 것이다.
이같은 개혁안의 과제를 성실히 이행하는 대학은 유인체제(INCENTIVE SYSTEM)에 따라 재정 및 평가에서 그만큼의 대가가 주어질것이고 이는 다음 단계를 위한 적절한 자양분이 될 것이다. 문제는 벌써부터 일부에서 제기되고 있는 인문계 대학의 난립우려이다. 큰돈 안들이고 쉽게 돈벌수 있는 인문계 대학이 개혁 초기에 발호하는 것은 어쩔수 없다 하더라도 얄팍한 상술은 망할수 밖에 없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 중요하다. 교육개혁안의 원칙이 흔들리지 않아야 하는 이유도 바로 여기에 있는 것이다.<황유석 기자>황유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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