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유럽/미 문화 침투확산 방지 안간힘(변화의 현장:4)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유럽/미 문화 침투확산 방지 안간힘(변화의 현장:4)

입력
1995.06.01 00:00
0 0

◎영화시장 할리우드 점유율 80%선까지/TV쿼터·불어전용법 등 전통수호 의지파리의 그랑부르주아(부유층)들이 모여사는 16구의 가장 사치스런 구역인 빅토르 위고가에 맥도널드 햄버거 가게가 문을 열었다 해서 얼마전 화제가 된 적이 있었다. 식도락을 인생의 큰 행복으로 여기는 프랑스인들이, 그것도 가장 돈걱정 없이 살만한 사람들이 햄버거를 먹는다 해서 화제가 아니었다. 화제의 이면에는 미국문화가 이렇게 깊숙하게 침투하고 있다는 다소 자조적인 시각이 깔려 있었다.

햄버거 하나가 아메리카문화를 대표하는 것은 아니지만 햄버거는 상징성이 있다. 우리나라 농민들이 93년 우루과이라운드(UR) 협상의 농산물 개방을 반대하며 수입농산물을 화형에 처할 때 우리농민 못지 않게 전투적인 프랑스 농민들은 맥도널드 가게의 유리창을 박살내곤 했다.

프랑스 문화, 더 나아가 유럽문화가 아메리카 문화에 잠식당하고 있다는 위기감을 유럽인들은 실감하고 있다. 프랑스 지식층 사이에는 샹젤리제문화는 격조있고 우아하며 할리우드문화는 저급하고 흥행적이라는 고정관념이 있다. 미국문화는 스필버그 감독의 「쥐라기공원」에 등장하는 탐욕스런 공룡으로 묘사되고 있다. 이 영화와 같은 시기에 프랑스 클로드 베리감독이 프랑스 영화사상 최대제작비를 들여 만든 에밀 졸라 원작의 「제르미날」이 프랑스에서 상영됐었다. 미테랑대통령과 자크 투봉 문화장관등 각료, 예술인 수백여명이 특별TGV 편으로 영화의 무대인 릴르시에 단체로 몰려가 이 영화 시사회에 참석한 것은 미국대중문화의 제국주의적 침략에 대한 저항의 제스처였다. 가장 프랑스적인 최고의 여배우 이자벨 아자니는 「쥐라기공원」 출연을 제의한 스필버그 감독을 딱지놓았다.

그러나 파리에서 「제르미날」의 관객동원 수가 「쥐라기공원」의 10분의 1도 따라가지 못한 것처럼 미국문화의 공세는 현실이다. 할리우드영화의 유럽시장 점유율은 80%인데 반해 유럽영화의 미국점유율은 단 1% 뿐이다. 프랑스 젊은이들은 마돈나를 열창하고 외설시비가 있던 마돈나의 누드사진집은 나오자마자 매진됐다. 「에디트 피아프」와 「이브 몽탕」은 더이상 프랑스에 존재하지 않는다.

미국과 유럽의 문화전쟁은 자존심을 건 싸움이다. 미국과 유럽의 UR협상에서 마지막 담판은 시청각부문의 포함여부였다. 우리나라는 쌀 수입개방압력에 손을 들고 말았지만 유럽은 시청각부문에서 승리했다. 프랑스 발라뒤르 전총리는 이 협상으로 영웅이 됐다. 올초 프랑스의 주도로 유럽TV 프로그램중 최소한 51%는 역내제작물을 방영해야 한다는 TV쿼터제 개정문제를 놓고 유럽연합(EU)이 논란을 벌인 것도 미국과의 싸움이다. 불어전용법 추진도 마찬가지이다.

대서양을 사이에 둔 두대륙간의 문화전쟁은 결국 냉전종식후 새로운 양상인 무역전쟁의 한부분이기도 하지만 이에 앞서 고유하면서도 다양한 유럽정신을 수호하는게 중요하다는 유럽인의 의지가 표출된 것이다. 문화는 「청바지」가 아니라는 것이다. 프랑스 문화부장관은 가장 중요한 각료중 한명으로 전통적으로 부총리급이다. 엄청난 돈이 들어간 바스티유오페라와 루브르박물관의 유리피라미드, 그랑다르쉬(제2개선문), 국립박물관 신축등은 미테랑 통치의 영웅적 기념비라는 비판도 받았지만 프랑스문화의 자긍심과 스케일을 과시하는 상징이다.

프랑스에서 문화는 곧 생활이다. 모든 문화정보가 담긴 「파리스코프」는 지하철표 한장보다 싸다. 퐁뇌프다리에 천을 씌우고 지하철에 앉으면 꼭 책을 꺼내는게 프랑스인들이다. 귀국전 파리시립현대미술관에서 열리는 샤갈 특별전을 꼭 보려했으나 갈 때마다 1∼2시간을 기다려야 하는 파리시민들의 극성으로 결국 발을 돌리고 말았다. 프랑스의 뤼미에르 형제가 영화를 발명한지 1백주년이 되는 올해 프랑스는 문화의 재중흥을 꿈꾸고 있다.

세계는 변화하고 있다. 그러나 문화수호는 변화의 현장에서 변하지 말아야할 유일한 것이라고 생각하며 프랑스를 떠났다.<한기봉 기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