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극단 비파의 「메카로 가는길」연출가 김철리가 극단 비파를 창단하고 나름대로의 길찾기에 나섰다. 창단의도를 『특정 유파로 화석화』하고 싶지 않은 것이라고 밝히면서 차기 공연으로 입센, 셰익스피어등의 작품을 예고하는 것으로 보아 우선은 서양 고전작가들의 세계를 탐험지로 삼고 있는 듯하다. 텍스트의 논리적 재현보다는 이미지의 조합, 언어의 음미보다는 격렬한 몸짓, 패러디나 공동창작등이 포스트모더니즘시대의 연극이라는 이름으로 대학로를 들뜨게 하고 있는 요즘 시대와 문화를 뛰어넘어 공감할 수 있는 고전에 도전한다는 것은 연극계의 균형을 잡는다는 점에서 고무적인 일이다.
극단대표로서의 험한 여정을 그는 아돌 후가드의 「메카로 가는 길」로 출발했다. 아돌 후가드, 반가운 이름. 남아프리카사회에서 소외되고 억눌린 이들의 세계를 그린 작품들로 군사정권시절 암울했던 우리 현실을 간접적으로 대변해 주었던 작가. 제3세계 현실참여연극을 대표하던 그가 이제 체제에 순응하기를 거부하고 자유를 꿈꾸는 여성에 대한 희곡으로 우리 앞에 돌아왔다.
극은 남아프리카 작은 도시에서 내면의 들끓는 자유의지와 예술혼을 실현하기 위해 투쟁하는 나이든 과부 헬렌과, 헬렌을 동경하며 그에게서 살아갈 힘을 얻고 싶어하는 젊은 여교사 엘사, 소도시의 가치관과 규범을 대표하는 마리우스목사간의 논쟁, 갈등을 중심으로 전개된다. 헬렌의 열정과 의지는 이제 독자적인 길을 개척하려는 김철리에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왔을 것이다. 그러나 막상 공연을 보고 난 후의 생각은 그가 미처 채비를 제대로 갖추지 않고 서둘러서 출발한 것은 아니었을까 하는 의구심이었다.
원작 자체가 길고 대화 위주라 지루할 소지가 많은 작품인데 김철리는 관객의 입장에서 재미를 느낄 수 있도록 정리해 주지 못했고, 대사에서 인물의 성격이나 무대장치등의 단서를 캐내는 작업도 소홀히 했다. 따라서 헬렌이 구원을 위해 떠난 메카로의 길을 관객들도 공감하며 따라나서기에는 연출이 길 모퉁이마다 분명히 세웠어야 할 도로표지판들이 너무 희미했고 앞장서서 관객을 동반자로 초대해야 할 헬렌의 성격묘사도 평이해서 설득력이 약했다.
고전의 세계를 탐색하려는 그가 길을 잘못 들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다만 이 감각적 시대에 작업을 거듭하면서 자칫 평이해 보이는 언어중심 연극의 깊고 고즈넉한 세계를 천착하면서 그를 안내자 삼아 뒤따라가는 관객들과도 호흡을 같이 하길 바라는 것이다.이혜경<연극평론가>연극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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