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산지불문” 불구 한국설계 거부 여전북미간의 콸라룸푸르 준고위급회담이 막바지로 접어들면서 북한의 협상카드가 드러나기 시작했다.
양측은 27일의 전체회담에 이어 28일 수석대표들만의 단독회담을 가졌다. 미측은 이러한 북측의 협상카드가 기본적 입장변화의 「단초」인지, 아니면 북한 특유의 「말바꾸기」에 불과한지를 판단하는데 협상력을 집중시키고 있다. 현지에 파견된 우리 정부의 협의대표단은 물론, 미측도 현재로선 양측의 입장차이를 메우기에는 북한이 제시한 카드가 턱없이 부족하다고 판단하고 있다.
미측이 촉각을 곤두세우고 있는 북한의 제안은 경수로사업에서 한국의 참여를 인정하며 경수로의 생산지를 문제삼지 않겠다는 내용이 골자이다. 북한은 26일 본국의 훈령을 받은 이후 이같은 제안을 꺼내기 시작했고 북한 외교부대변인도 27일 중앙통신과의 회견에서 『우리는 어느나라의 기술및 설계인지를 중시하지 어디에서 만들어진 것인가에는 개의치 않겠다는 입장을 시종 견지해왔다』고 말했다.
북한은 회담에서 이러한 내용을 획기적인 제안이라고 주장하면서 미측의 정치적 양보를 요구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그러나 문제는 생산지를 개의치 않겠다는 것이 한국형 또는 한국의 중심적 역할을 인정하는 입장변화로 볼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러한 판단을 위해서는 북측의 또다른 주장을 살펴볼 필요가 있는데 지금 단계에서의 결론은 부정적이다. 북한은 중심적 역할의 핵심인 한국기업의 경수로 책임설계및 주계약자 선정을 완강히 거부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북한은 미기업이 설계에 전적인 책임을 진다면 경수로사업의 여타 부분에서 한국기업의 참여지분은 별도의 협상을 통해 해결 가능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북한의 요구대로 미국이 설계해서 「미국형」이라고 내세울 수 있는 근거만 생기면 그것이 한국에서 제작되든 제3국에서 제작되든 하등 문제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이처럼 한국의 중심적 역할확보 원칙이 한국기업의 참여지분을 놓고 줄다리기를 벌이는 상황으로 변질하는 과정에서 제기되는 또 한가지 문제점은 「한국표준형 경수로」의 실체가 실종되고 있다는 점이다. 북한이 한국형경수로의 존재를 인정하지 않는 마당에 명칭을 양보하고 설계마저 미국이 맡는다면 그것은 더이상 한국형이라고 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같은 상황에도 불구, 미측은 회담이 장기화하자 원칙을 견지하기보다는 남북한의 입장과 요구를 절충, 적절히 포장하는 쪽에 무게를 두고 있는 것같다.
그러나 한국형 관철및 한국의 중심적 역할확보는 우리의 재정부담에 따른 원칙의 문제인 동시에 정치적 명분이 걸린 문제이다.<콸라룸푸르=고태성 기자>콸라룸푸르=고태성>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