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랜드 센트럴역은 뉴욕 맨해튼에서도 가장 복잡한 곳 가운데 하나다. 지하철이용객만 매일 23만명에 달하고 여기에 기차이용객과 행인까지 합하면 하루 유동인구가 50만명은 족히 된다는게 뉴욕시 교통당국자의 말이다.지나는 사람들이 많다 보니 역사내의 중앙전시장에서는 크고 작은 전시회가 끊이질 않는다. 얼마전부터는 「유고 그 다음(YUGO NEXT)」이라는 이름의 전시회가 길가는 이의 발을 멈추게 하고 있다. 자동차에 관심있는 사람은 알겠지만 「유고」는 80년대 중반 구유고연방에서 생산해내던 자동차 이름이다. 성능과 디자인이 형편없으면서도 파격적으로 싼 가격덕에 한때 미국에서도 꽤나 잘 나갔었다. 하지만 품질이 괜찮고 가격도 저렴한 현대 엑셀이 등장하자 순식간에 미국자동차시장에서 자취를 감췄다. 지금은 할렘같은 빈민가에서나 어쩌다 눈에 띌뿐 모국이나 마찬가지로 생명이 끊어진지 오래다.
「유고 그 다음」 전시회에는 뉴욕시각디자인학교 학생들이 실물 「유고」로 만든 갖가지 디자인작품들을 선뵈고 있다. 이 전시회가 표방하는 주제는 「아무짝에도 쓸모 없는 것에서 창조적인 것을」이다. 전시된 26가지 작품들은 우체통 수족관 벽난로 쥐덫에서 고약한 냄새까지 풍기는 「유고공중변소」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고 기발하다. 학생들이 「유고」자동차를 구하기 위해 신문광고를 냈더니 사흘만에 무려 2백50명의 「유고」자동차 주인들이 『돈은 상관없으니 가져가라』고 나서 대당 50∼4백달러의 고철값에 살수 있었다고 한다.
신문의 전시회소개기사들은 한결같이 「드디어 유고가 제용도를 찾았다」고 조크했고 관람객들도 웃음을 참지 못한다. 하지만 세상사람들이 다 웃어도 유고출신 사람들은 그럴 기분이 아닐 것이다. 우리네로서도 마냥 웃을 일만은 아니다. 매일 수십만명의 웃음거리가 되고 있는 「유고」를 바라보며 경쟁력없는 제품과 이를 만들어내는 국가, 국민을 비참하게 만드는 냉혹한 국제경제의 현주소를 생각해본다.<뉴욕=김준형 특파원>뉴욕=김준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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