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국의 한 농부가 수확된 밀에 새하얀 농약가루를 컵으로 뿌려대는 사진이 공개됐다. 화재현장의 소방호스를 연상케 하는 대형 살포기가 사과더미위에 농약을 쏟아붓는 장면, 오렌지 낱알을 마치 목욕이나 시키듯 농약을 뿜어내는 첨단기계의 모습도 드러났다.「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은 25일 일본 소비자단체가 촬영한 이 비디오필름을 소개하면서 『미국은 수출용 농산물에 엄청난 양의 농약을 살포하고 있다』고 밝혔다. 또 『그러나 미국인들이 먹는 내수용 농산물엔 농약은 쓰지 않는다』며 자국민과 외국인의 건강마저 차별대우하는, 「개방」을 앞세운 미국의 농산물 농약세례위험을 경고했다.
충격적 장면들이 일반에 공개된 바로 그 때 정부는 「식품위생관리제도 개선대책」을 발표했다. 지난달 세계무역기구(WTO)제소이후 1개월반동안 국내외 현지조사까지 벌이며 모처럼만에 관계부처 합동으로 생산한 역작이었다. 골자는 선진국 통상압력의 표적으로 떠오른 통관검역 및 식품유통기한제도를 세계추세에 맞도록 자율화하겠다는 것. 정부는 그러나 절차를 간소화하고 규제를 푸는 대신 엄격한 검사와 철저한 사후관리로 『선진국 통상압력과 국민건강을 맞바꾸는 일은 절대 없을 것』이라고 단언했다.
농약으로 범벅된 미국산 농산물의 사진과 『제도는 타협해도 국민건강만은 타협하지 않겠다』는 정부발표를 거의 동시에 접한 국민들은 어리둥절해 하고 있다. 일부에선 비디오필름의 신뢰성에 의문도 제기하지만 정부발표의 안정감보다는 사진이 주는 불안감이 더 크게 와닿는게 사실이다.
주한미군들의 폭행사건에 수입농산물 불매운동마저 겹쳐 국민적 반미감정은 새 국면을 맞고 있다. 정권의 정통성과 연결지었던 과거의 반미감정과는 다른 차원이다. 개방이 불가피한 세계화시대에 국민들이 정부에 바라는 것은 「개방의 포기」가 아니라 미국을 대할때 좀더 당당한 태도를 보여주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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