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민정부가 출범하자마자 전격적으로 단행됐던 공직자재산공개는 신선한 충격이었다. 그 서슬 시퍼렇던 사정의지와 청량한 개혁의 바람은 많은 국민을 가슴설레게까지 했었다. 30년 부패의 묵은 때가 벗겨지고 나라가 새롭게 거듭날 것같은 기대감마저 있었다. 금융실명제와 뒤이은 부동산실명제 역시 역사의 평가를 받을만한 제도개혁이라고 많은 사람들은 생각하고 있다.이형구 전노동부장관의 경우는 정의와 개혁에 대한 이같은 국민적 신뢰에 상처를 입혔다. 재산공개와 금융·부동산실명제만 있으면 부정한 검은 축재와 불로소득은 발붙이기 어려울 것이라는 국민적 믿음을 깼다.
실명제하에서는 부패한 도심 생길 수 없고 뇌물등 부정한 거래는 이루어질 수 없는게 정상이다. 그러나 이전장관은 재산공개나 실명제에도 불구하고 검은 돈은 가·차명으로 얼마든지 거래될 수 있고 또 얼마든지 숨길 데가 있다는 것을 증명했다.
이전장관의 경우는 한가지 예외적인 사례에 불과한 것이라고만 믿기가 어렵다. 대다수 국민은 또 얼마나 많은 고위공직자들이 불성실한 재산공개를 하고 실명제를 어겼을까 하는 의혹을 품지 않을 수 없게 됐다.
이것은 문민정부가 내세운 새시대의 상징에 금을 가게 하고 개혁의 제도적인 틀에 빗물이 새고 있다는 것을 보여준 것이므로 결코 가볍게 보아 넘길 수 없는 문제다. 이번에 어떤 교훈을 얻지 못하고 새로운 분발심을 갖지 못한다면 개혁은 점차 시들한 것이 되고 결국은 물거품이 돼버릴 우려도 없지 않다.
이전장관은 산은총재 시절인 93년 9월부터 95년 2월사이 세차례에 걸쳐 재산공개를 했지만 의심할만한 점이 없었다. 정부공직자윤리위는 1급이상 재산등록 변동신고자 9백여명에 대한 중간심사 결과 5명 안팎만 불성실 신고자로 경고하거나 시정조치 할 것으로 알려졌다. 지난 93년에도 1급이상 5명만 경고 시정조치를 받았었다.
불성실신고는 최근 국회에서도 드러났다. 국회공직자윤리위는 금융부문만 골라 관계기관자료와 대조한 결과 신고내용과 1천만원 이상 차이가 나는 의원만 26명에 달했다고 밝혔다. 1천만원 이하까지 합치면 숫자가 너무 많아 아예 제외한채 심사를 했고 금융기관이 너무 방대해 증권회사등 제2금융권은 자료요청을 하지 않았는데도 이 정도였다. 윤리위는 이중 6∼7명만 대상으로 최종 심사를 했다.
그동안 부정한 공직자들의 스캔들이 얼마나 많았었던가를 생각해보면 재산공개와 실명제가 무슨 위력이 있는 것인지 의심이 갈 정도다. 개혁의 틀이 되는 이들 제도가 유명무실해져서는 안된다. 노골적인 제도의 유린을 그냥 보아 넘기는 것은 곤란하다. 개혁의 실과 명을 일치시켜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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