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안보정책조회의 제도화/안병준(한국논단)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안보정책조회의 제도화/안병준(한국논단)

입력
1995.05.25 00:00
0 0

정부인사가 안보정책에 관한 연설이나 발표를 할 때 핵심부처의 조회를 받는 제도를 정착시킬 필요가 있다. 이것은 안보에 대한 정책표명에서 예기치 않았던 실수를 방지하여 공동목표 인식과 국내외 지지를 확보하기 위해서도 필요하다. 이 제도는 정부의 중심부에서 제도적으로 확실한 지침과 조회를 실시할때 가능하다.최근에 교육부장관이 한국전쟁과 국군의 월남파병에 대하여 언급했던 것이 심각한 파문을 일으켜 해임된 일은 이 조회의 필요성을 절감케 했다. 이런 일을 미연에 방지하고 혼선을 막기 위해서 적어도 정부당국자의 중요한 발표는 사전에 책임부서의 조회를 거치는 것이 바람직하다.

사실 미국의 경우 외교안보문제에 대해서도 차관보(한국에서 국장급) 이상의 인사가 정책연설을 할 때는 사전에 백악관의 조회(CLEARANCE)를 받게 하고 있다. 이 관례는 집권정권의 정책에서 일관성을 유지하기 위해서도 필요하지만 국가이익면에서 안보, 번영, 국위와 같은 목적을 거국적으로 추구한다는 인식을 갖는데 기여하고 있다.

시시각각 변화하는 정세에 대하여 정책을 관장하는 정부와 장관 국장은 바뀌지만 국민, 영토및 정부로 구성되는 국가는 영구히 지속하므로 국가생존과 안보에 대하여 고급관리가 의견을 개진할 때는 신중을 기하도록 제도적 장치를 완비해야 할 것이다. 외교안보 통일에 관하여 각 부서와 부문간에 정보, 의견및 정책을 조정할 수 있는 중심부가 존재해야 그것이 중앙지침과 최종적 조회를 실시할 수 있다. 이 분야의 정책은 일정한 국가전략에 입각하여 고안되어야 하며 전문적 인사들에 의하여 고려되어야 한다. 정책도 최고결정자가 결정을 내리기 전에 전문적 분석에 근거하여 철저한 검토를 거쳐야 한다. 북한이 한국형 경수로를 수용할 것인지를 판가름할 북·미회담이 진행되고 있는 이때 그 성과가 발표될 때마다 우리는 반응적으로만 대처할 것이 아니라 우리의 포괄적 대북정책원칙을 명확하게 설정해놓고 그 테두리안에서 경수로문제를 취급해야 하며 남북관계를 주도해야 할 것이다.

만약 경수로에 대한 회담이 우리의 계획대로 되지 않을 경우에 대해서도 우리는 철저하게 대비해야 한다. 예컨대 북한이 진실로 원하는 것이 경수로가 아니고 핵동결만 이행하여 미국으로부터 연락사무소 설치, 중유공급및 관계정상화만 기도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할 것인가. 미국은 북한이 핵동결만 한다면 계속해서 제네바합의를 이행할 것이며 6월27일 한국지방선거후에는 연락사무소도 설치하고 나아가서 정치대화와 경제협력을 격상시켜 북한체제의 변질을 추진할 것으로 예상된다. 이때 북한이 여전히 남북대화는 외면한다면 우리는 어떻게 해야 할 것인가가 문제이다.

경수로문제가 미결되더라도 그것을 제쳐놓고 미국의 협상정책을 따라서 우리도 본격적인 경제협력을 개시할 것인지 또는 경수로제공과 핵사찰을 연계한 제네바합의의 재고를 요구할 것인지를 결정해야 할 것이다. 설혹 북한이 형식적으로나마 남북대화에 응한다고 해도 당장에 성과를 거둘 수는 없을 것이므로 그러한 대화야 차라리 접어두고 아예 북·미 국교정상화를 적극적으로 권장하는 것이 북한체제 변화를 유도하기 위해서 필요하다는 주장도 있다.

문제는 이렇게 할 때 북한이 한국과 대화를 통하여 비핵화, 평화협정및 교류협력을 직접 협상하지 않을 것이라는데 있다. 궁극적으로 비핵화와 평화는 남북회담없이는 성취될 수 없는 것이다. 설혹 북한이 내부사정으로 인하여 한국과 대화에서 실질적인 합의를 하지 않을지라도 우리는 대화와 협상을 하나의 과정으로 발전시키는 전략을 끈기있게 고수해 가야 한다.

이와같이 경수로문제를 넘어서 보다 포괄적인 남북관계를 우리가 주도해가려면 안보정책 결정의 중심부에서 고도로 조화된 지침과 조율을 실천해야 한다. 우선 국내에서 초당적인 지지기반을 구축하며 미국및 일본에서도 우리의 입장을 지지하는 세력들을 규합하기 위해서도 뚜렷한 원칙과 방향을 제시하는 중심이 있어야 한다.

탈냉전기의 세계에서 강대국들은 자신들을 위협하는 실체가 없어졌으므로 한반도문제를 강건너 불로 보는 경향이 있다. 이 냉엄한 현실에서 우리도 스스로의 힘으로 안보를 지키겠다는 의지를 결집할 때 마침내 북한의 의지를 꺾을 수 있으며 우방과의 동반관계도 유지할 수 있다. 우리의 안보정책 수립및 집행도 이제 자율적인 하나의 체제로 정립할 때가 왔다. 어떤 형태로든지 안보에 대한 연구, 기획, 조정및 평가제도와 절차를 제도화하고 정부활동과 민간외교도 어느 정도까지 조화하는 것을 실천해가야 할 것이다.<연세대교수·국제정치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