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속철도 통과·경마장 건설 확젱에 “문화유적파괴” “지역발전촉진” 격론경주의 모습은 1920년대부터 계속된 문화재발굴과 보존노력, 70년대 이후 본격화한 개발이 뒤섞여 부조화를 이루고 있다. 경주개발은 학자들에게 문화유적파괴로 인식되고 있으며 보존론은 개발론자들에게 현실을 무시한 탁상공론쯤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정부가 경부고속철도의 경주통과와 경마장 건설을 확정하자 역사·고고·미술관련 16개 학회가 반대운동에 나서는가 하면 일부 경주시민들은 이들이 주최한 세미나를 실력저지하는 일까지 일어났다. 경주개발과 문화재보호는 상충될 수 밖에 없는가. 보존론은 단지 원형유지만을 주장하는 억지이며 개발은 오직 지역발전만을 생각하는 단견인가. 관련학자들과 경주시민들의 주장을 토대로 바람직한 해결방안을 모색한다.<편집자주>편집자주>
◎경주 발굴·개발 약사
▲1921년 금관총 발굴(금관 출토)
▲1924년 금령총 발굴(〃)
▲1926년 서봉총 발굴(〃)
▲46년 호우총 발굴(광개토대왕 제사유물 출토)
▲62년 문화재보호구역(5백94만여평) 지정
▲72년 경주고속버스터미널 완공
▲72년 한옥미관지구(1백만여평) 지정
▲72년 고도제한지구(1백80만여평) 지정
▲73년 155호분(천마총) 발굴(천마도 발견)
▲73∼74년 98호분(황남대총) 발굴
▲76∼92년 황룡사터 발굴
▲74년 안압지 발굴
▲70년대 중반 경주역세권 형성
▲74∼79년 경주보문단지(3백12만5천여평) 조성
▲85년 경주도투락월드 개장
▲90년대 대규모 고층아파트 건설 본격화
◎보존론/“지상·지하 막론 도시전체가 박물관 편의에 집착 문화보고파괴 안될말”
세계적으로 2천년이나 사람들이 살아온 도시는 드물다. 한때 반짝하고 빛나다가 사라진 도시는 많지만 2천년을 계속해서 반짝이며 번성해온 도시는 아주 드물다. 그런 의미에서 우리의 경주는 세계적으로 희귀한 존재이다.
신라의 전신인 사로 육촌의 촌장인 이·정·손·배·설씨가 함께 추대한 박혁거세(박혁거세)가 임금에 오르는 것으로 신라의 역사는 시작된다. 그때부터 지금까지 경주에는 단절없이 주민이 살아왔다. 그동안에 경주는 대형 고분, 각종 불교문화재로 가득찬 보물창고로 변화하였다. 여기서 민족최초의 통일위업이 구상되었으며 대덕, 원효, 혜초와 같은 고승이 탄생했다. 한국인의 정신문화의 모태로서 경주는 화랑정신, 화백회의제도, 극락정토사상이 깔려 있는 곳이다. 그런 정신문화의 구체적 결실인 유형문화재가 경주와 그 주위에 무수히 묻혀 있다. 그래서 유네스코는 경주를 세계적인 역사도시로 생각하고 보존을 위해 남다른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런 역사의 도시가 지금 중대한 파괴의 위협에 직면하고 있다. 과거 일제는 신라의 호국사찰인 사천왕사터를 관통하는 철로를 개설하였다. 얼마든지 사천왕사를 파괴하지 않고도 철도를 놓을 수 있는 땅이 있었는데도 불구하고 사천왕사를 파괴한 것은 한민족을 일본의 식민지로 영원히 묶어두려던 그들의 의도적인 작태였다. 우리 땅 전역에 기를 막기 위해 쇠말뚝을 박은 것과 똑같은 맥락으로 사천왕사는 파괴되었다.
지금 우리는 우리 손에 의하여 다시 경주시 남산자락을 통과하는 고속철도를 계획하고 있다. 현재의 경주시는 신라때 경주의 8분의 1밖에 안된다. 지금의 논밭이 신라때도 논밭이라고 생각해서는 안된다. 신라때 경주는 지금의 논밭자리에 정연한 방리로 도시가 구획되어 신라인들이 살았던 집터 절터자리이다. 오늘의 논밭에 남아 있는 농로는 신라때 만들어진 도로들이다. 항공촬영으로 판독해 보면 신라때 경주의 도시계획이 동서남북으로 정연하게 땅속에 남아 있다. 남북으로는 경주역으로부터 불국사 입구까지, 동서로는 보문지역부터 고속도로 인터체인지까지 신라때의 시가지가 땅 속에서 조용히 숨쉬고 있는 모습이 보인다. 따라서 한국 불교문화재의 보고인 경주남산은 신라 경주의 한복판에 우뚝 서 있는 시내공원과 같은 것이었다.
그런데 그런 경주시내에다 고속철도를 끌어들이려 하고 있다니 안타깝기 짝이 없다. 일제가 사천왕사를 파괴한 만행을 탓하기에 앞서 이번에 우리 손으로 한국 최대 최고의 문화유적지가 파괴될 위험에 직면하고 있다. 사천왕사를 철도가 파괴한 것을 경주의 심장부가 비수에 찔린 것으로 본다면 고속철도의 경주통과는 신라 경주의 오른쪽 허파에 상처를 입히는 일과 같다고 생각한다.
역사는 잘잘못을 깨우쳐 주는 거울과 같은 것이다. 역사를 안다는 것은 민족의 미래를 보장받는 일이다. 그런 역사의 최대의 교육장이 단기적 편리성에 눈이 어두운 사람들에 의하여 파괴되도록 묵인해서는 안된다. 세계의 어느 역사도시에도 고속철도를 놓은 민족은 없다. 세계 어느 민족도 고도에다 도박장인 경마시설을 한 예가 없다.
이것이 한국인의 진취성인가, 아니다. 이것은 한국인의 단점 중 하나인 습관적 시행착오증이다. 신라때 김유신장군은 기녀 천관과 사련에 빠졌었지만 마상에서 졸고 있는 주인을 습관적으로 천관의 집으로 태우고 간 애마를 참수하였다. 이런 결단력이 삼국통일의 위업을 이룬다. 경주에 고속철도, 고도에 도박장 유치는 재고되어야 한다. 김유신같은 결단력이 필요한 시점이다.<김병모 한국고고학회장> ◇김병모씨 약력 김병모>
▲40년 서울 출생 ▲서울대 고고인류학과 졸 ▲로마 국제문화재센터 수학 ▲영국 옥스퍼드대 고고학박사 ▲현 한양대 교수, 유네스코 박물관협의회 이사
◎개발론/“방치상태에서 규제만… 상대적 낙후 고속철·경마장 국제관광지도약 발판”
향가와 금오신화가 살아 숨쉬는 신라천년의 고도 경주는 세계인이 인정하는 보고로서 말 그대로 울타리 없는 노천박물관이다. 곳곳에 산재하는 유물들을 통해 우리 경주시민은 신라인의 향기를 느끼고 있으며, 그들의 후예로서 뿌듯한 자긍심을 가지기도 한다.
그러나 경주는 80년 이후 관계당국의 무관심과 예산부족으로 개발도 보존도 아닌 거의 방치되다시피 하여 뜻있는 사람들을 안타깝게 하고 있는 것 또한 현실이다. 경주는 그동안 전국적인 산업발전의 경제성장 뒤에서 온갖 규제와 제한으로 한국민이면 누구나 누릴 수 있는 보편적인 삶의 형평성에서도 상대적으로 낙후되어 심각한 피해의식에 사로잡혀 있다.
뒤늦은 감은 있지만 다행히 최근에 경주의 도약을 위한 많은 정책들이 수립되고 있다. 고속철도는 무려 16년여에 걸친 논의와 조사 끝에 대통령 공약사업으로 확정된 바 있다. 경부고속철도는 이용가능지역이 넓고, 경제성 또한 우수한 것으로 입증됐다. 한반도 동남권의 핵심적 공업도시이자 인근 공업도시인 제철한국의 기수 포항과 한국 자동차공업과 수출의 메카인 울산의 중간지점인 경주를 통해 고급두뇌와 산업인력 수송을 극대화할 수 있으며 배후지원도시로서의 기능을 강화할 수 있고, 울산 포항등 주변 공업도시의 산업발전을 가속시키는 촉진제가 될 것이다. 또 연간 6백70만명에 이르는 국내외 관광객이 찾는 경주의 위상을 더욱 높일 수 있다.
많은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고속철도의 대구―경주노선 32는 문화재가 집중분포된 지역을 최대한 피했으며, 현 철도역사를 고속철도역사로 이전·통합함으로써 철도노선으로 인해 훼손된 안압지, 사천왕사지, 신문왕릉등의 주변문화재를 원상복원할 수 있는 이점도 있다. 경마장 건설에 대해서는 91년에 한국산업경제원이 조사한 영남권내 지방경마장 설치 타당성 분석에서도 대구, 부산, 경주중 경제성 사회성 지리적 특성등 모든 면에서 경주가 가장 타당한 것으로 판명됐다. 경마장 건설은 문화유적지 답사와 연계, 경주를 찾는 관광객들에게 다양한 여가 및 레저활동욕구를 충족시켜줄 수 있다. 이는 보는 관광과 참여하고 즐기는 관광을 겸하는 전천후 국제관광도시로서의 기능을 부여하는 필수적 과제이다.
고속철도 통과구간 및 경마장 건설예정지는 고분군, 유물 산포지, 토기묘지군, 기와산포지등의 발굴및 보존을 위해 문화재 자문위원회의 자문을 받아 정밀조사를 실시하고 착공 전에 보존할 것은 한 곳으로 집중시켜 또 하나의 새로운 관광과 산 교육장으로 만들 수 있다. 두 가지 사업으로 인해 경주시 전체의 문화재가 파괴되는 것처럼 생각하나 지나친 기우일 뿐이다. 고속철도는 기존 설계시에 이미 통과구간 상당부분을 지하화로 계획했다.
차제에 반대를 위한 반대의 목소리만 내세울 것이 아니라 그동안 상대적 낙후성을 묵묵히 견디어 온 경주의 진정한 발전과 보존을 위해 지상의 유적을 보존할 수 있는 지하고속철도를 적극 추진하는 것이 현실적이라 생각한다. 두 가지 국책사업은 경남·북 시민들에게 여가, 교육, 휴식공간을 제공하고 새로운 국제관광도시로서 관광객 유치를 극대화할 수 있게 해준다. 이는 지방재정 확충에 크게 기여, 제3 제4의 관광자원 개발로 연결될 것이다.
보존과 개발은 상반된 개념이 아니라 상호보완적이어야 한다. 전국민이 아끼는 경주이듯이 세계인이 아끼는 경주를 만들기 위해서는 우리 모두가 지역적이지 않고 현학적이지 않은 진정한 고도 경주사랑의 새 장을 열어야 할 것이다. 그동안 묵묵히 희생을 감내해 온 대다수 경주시민은 두 가지 국책사업이 기필코 성사돼야 함을 주장하면서 정책당국의 초지일관된 약속을 굳게 믿고 있다.<김정수 경주상공회의소 회장>김정수>
◇김정수씨 약력
▲45년 경주출생 ▲경주고, 동국대 졸 ▲경주청년회의소회장 ▲현 경주시 정책자문위원, 경주시선관위원, (주)신라도시가스·(주)계림 신라백화점 대표이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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