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윤대녕의「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소설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윤대녕의「피아노와 백합의 사막」(소설평)

입력
1995.05.24 00:00
0 0

◎도시적 삶의 산문성에 대한 반란윤대녕의 중편 「피아노와 백합의 사막」(문학사상 5월호)은 최근 내가 읽은 작품 가운데 가장 인상적인 것의 하나다. 첫 작품집 「은어낚시통신」으로 이미 90년대의 대표적 신진작가의 한 사람으로 주목받은 그는 이 중편에서도 뛰어난 문장력과 탄탄한 구성력을 바탕으로 만만치 않은 주제를 탐색해 들어감으로써 우리를 눈부시게 한다. 사실 나는 그동안 그의 새로움에 유의하면서도 그 경쾌함이 무언가 과장된 활기가 아닌가 해서 약간씩 마음에 걸리곤 했는데, 이번 작품에서 괄목상대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

주인공이 11박12일간의 실크로드여행을 마치고 상하이공항에서 서울행 비행기를 기다리는 장면에서 시작되는 이 작품은 요새 바짝 유행하는 외국여행기의 형식을 취하고 있다. 재벌그룹 산하의 증권회사에 근무하며 안정된 생활을 누리고 있던 그는 갑자기 왜 이 여행에 끼어들었는가? 다시 말하면 무엇이 그로 하여금 빈틈없이 돌아가는 이 자본주의적 삶으로부터 돌발적인 일탈을 감행하도록 부추겼는가? 여기에 사막이라는 상징이 개입한다. 실크로드여행단에 참여한 것도 순전히 사막을 보기 위해서였다. 국민학교 1학년, 아폴로 11호가 달에 착륙했을 때의 기이한 감동의 여파로 파생한 사막여행의 꿈. 그러나 그후 오랫동안 망각 속에 묻어두었던, 아니 묻어두지 않을 수 없었던, 그리하여 이제는 그런 꿈을 꾸었는지조차 까마득히 잊었던 상태에서 불쑥 일상의 틈으로 침입한 그 꿈은 그를 일종의 반란으로 끌고 간 것이다. 그 꿈이 1969년 달 착륙에서 비롯된 점도 흥미롭다. 이 사건은 중층적 의미를 가지고 있다. 달마저 자신의 영역으로 식민화함으로써 달의 아우라(AURA)의 마지막 커튼을 찢어버린 이 사건은 건조한 부르주아적 산문성과, 저 텅빈 허공 속으로 거침없이 자신을 내맡기는 부르주아적 모험성을 함께 표상하는 것이다. 사막여행을 통해서 그는, 지방도시출신으로 대도시 서울로 와 안정된 직장, 안정된 가정을 꾸리기 위해 싸워왔던, 겉으로는 반듯하지만 속살로는 누추한 자신의 반생을 반추한다. 이 지점에서 여행의 의미가 떠오른다. 그것은 안정의 대가로 사라져버린 혹은 사라져 가고 있는 생활의 의미를 놓고서 벌이는 뼈저린 투쟁이었으니, 자본주의적 발전이 야기한 인간의 도덕적, 또는 영혼의 왜곡에 저항하는 주인공의 반역이 어떻게 전개되어 나갈지 하회가 궁금하다. 이는 한편 90년대문학이 본격적으로 탐사해야 할 무궁한 광맥이기도 한 것이다.<최원식 문학평론가·인하대교수>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