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며」/“육체보다 삶의 질 중시 「인간다움」 유지능력에 삶과 죽음의 기준 둬야”/「미국인의 자살」/“병적인 정신상태서 환자 대부분 죽음선택 조언통해 희망 심어줘야”의학기술의 발달과 함께 생명연장이 수월해지면서 삶과 죽음이 신의 의지로부터 개인적 결단의 문제로 바뀌어 가고 있다. 안락사, 낙태등의 쟁점을 다루는 「생의윤리학」에서는 아직도 논쟁이 분분하지만 죽음의 현장에서는 점차 「인간에 의한 인간의 죽음」이 정당한 것으로 받아들여지는 추세이다.
최근 미국에서는 삶과 죽음을 다룬 두 권의 주목할 만한 책이 나왔다. 동물의 권리를 제창했던 철학자 피터 싱어가 쓴 「삶과 죽음을 다시 생각하며」(세인트 마틴스 프레스간)와 정신과의사 허버트 헨딘이 낸 「미국인의 자살」(노튼&컴퍼니간)은 안락사, 자살에 대해 서로 다른 견해를 보이고 있어 흥미롭다.
피터 싱어는 『인간생명은 신성한 것이라는 전통윤리학의 전제는 죽음을 눈 앞에 둔 치료현장에서는 무용한 것이 된지 오래』라며 삶과 죽음에 대한 판단기준이 바뀌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있다. 인공호흡기나 다른 의료기기에 의해 최소한의 생명활동이 가능하더라도 「뇌기능이 재생할 수 없도록 상실됐을 때」 죽음을 선고받는 것이 현재의 지배적인 행태이다. 하지만 싱어는 무뇌아의 경우나 어떤 뇌기능들은 뇌피질이 죽었을 때도 계속 활동한다는 문제를 들어 그 기준의 부적절함을 논박한다.
그가 내놓은 새로운 기준은 인지, 각성, 감정반응등 「인간다움」을 유지하는데 필요한 능력. 미국 영국 오스트레일리아등 여러 나라에서 뇌피질기능 상실환자로부터 생명연장장치를 제거한 사례를 분석, 죽음을 결정한 가장 큰 요건은 「삶의 질」에 대한 판단이었다고 분석한다. 싱어는 그 기준을 지지하면서 삶에 대한 권리는 그가 인간의 육체를 가졌기 때문이 아니라 「인간다움」을 지니고 있는가에 달려 있다고 주장한다.
그는 특히 안락사와 도움을 통한 자살도 인정해야 한다며 네덜란드인들은 전체의 80%정도가 종교에 관계없이 안락사를 지지하고 있고, 93년부터는 법적으로 허용받고 있다고 소개했다.
그러나 허버트 헨딘의 「미국…」은 정신과환자, 죽음에 임박한 사람들과의 상담·치료사례를 통해 싱어의 견해가 틀린 것이라는 점을 보여준다. 그는 82년에 초판이 나온 이 책을 최근 확산되고 있는 「의학적 죽임」에 대한 반론을 펴기 위해 개정해 출판했다. 그는 『죽을 병을 선고받은 환자들은 대부분의 자살성향이 있는 사람들처럼 정신적으로 병적인 상태가 된다』며 그런 비정상적 정신상태에서 죽음에 대한 결정을 내리게 된다고 말한다. 환자들이 두려워하는 것은 사실은 죽음 그 자체인데, 그것을 고통이나 삶에 대한 의지상실과 혼동하고 있다는 것이다. 그런 환자들의 대부분은 극도의 우울증상태에서 죽음을 위해 삶과 싸우게 된다.
헨딘은 환자들이 계속적인 상담과 조언을 통해 올바른 시각으로 자신의 삶을 바라볼 수 있게 유도하는 것이 중요하다고 강조하면서 케보르키안처럼 자살을 보조하는 의사들은 그런 경우를 적절히 다룰 능력이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안락사가 당사자의 의사에 반해 이루어지는 일이 없다」는 의료계의 주장과 달리 의사들이 생명을 끊도록 유도한 경우가 적지 않음을 인터뷰사례를 통해 제시하고 있다. 그리고 우울증에 빠진 사람들이 자살을 선택하는 것을 개별적, 전문적으로 다루지 않고 법으로 용인하는 네덜란드와 같은 경우를 「죽음의 문화」를 확산시키는 잘못된 추세라고 개탄했다.<김범수 기자>김범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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