걸프전에서 명성을 날렸던 M1A1(에이브럼스) 탱크가 주한미군에 배정돼 15일 그 첫 인도분이 전달됐다. 3회에 걸쳐 들여오는 이 최신형탱크는 미 제2사단이 기왕에 보유하고 있던 M11P를 대신하게 된다. M1A1탱크가 직접 한국군에 배치된 것은 아니나 평시작전권이 한국군에 넘어와 있기 때문에 미2사단에 배치된 이 신형탱크는 한국군에도 상당한 전력보강 효과가 있을 것으로 평가되고 있다. 걸프전의 미군 지상군 주력을 담당했던 M1A1은 거대한 1백20밀리직사포와 7.62밀리 기관총, 그리고 12.7밀리대공포, 연막탄발사대등을 장착한채 이라크사막을 종횡무진으로 누비며 연합군의 승리를 가져오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했었다. 이라크는 소련제 신형 T72를 갖고 에이브럼스에 맞섰다. T72는 몸통이 에이브럼스보다 약간 짧고 몸무게도 에이브럼스의 63톤보다 작은 45.2톤이나 1백25밀리 직사포, 7.62밀리 기관총, 12.7밀리 대공포들을 장착하고 있으면서 속도가 에이브럼스보다 10킬로이상 빨라 절대로 만만하게 볼수없었다. 그러나 에이브럼스는 T72를 거의 전쟁초기에 다 때려 부셨다. 기동력이 강했고 공중조기경보기의 도움을 받아 T72가 움직이고 있는 방향의 목을 지킬수 있었기 때문이었다.현재 한국은 에이브럼스 탱크의 변신인 한국형 K1탱크를 주력으로 갖고 있고 북한은 6·25침공당시에 쓰던 T34와 이것의 신형인 T72로 무장돼 있다.
앞으로의 전쟁은 약간 양상이 다르겠지만 현대전에서 탱크의 역할은 적어도 지상전의 경우에는 결정적인 영향을 미쳐왔다. 탱크는 1차대전 당시 장갑차(ARMOURED VEHICLE)형태로 처음 등장해 위력을 발휘하기 시작했는데 2차대전중 나치독일의 하인츠 구데리안장군이 탱크를 앞세운 전격전을 개발해 유럽을 휩쓸면서부터 대부분의 지상전을 탱크전양상으로 바꿔놓게 된것이다. 1차대전당시 일선소대장을 지냈던 구데리안은 전후 ACHTUNG PANZER(요주의, 장갑차)라는 명저를 쓰고 본인이 직접 전차제작책임을 맡으면서 전차를 앞세운 전격전략을 개발했다. 전격전(BRITZ KRIEG)은 전차를 앞세운 공격군이 적이 미처 방어태세를 갖추기 전 심장부까지 침투해 지휘통제통신(3C)부문을 파괴시킴으로써 마치 머리없는 군대가 되게 한후 나머지부대를 기갑사단으로 조기에 소탕한다는 개념이다. 나치독일은 이 전법으로 부대진격속도를 일찍이 유례가 없었던 1일 40마일(64킬로)선을 기록했었다.
한국전에서 북한은 전차를 앞세운 전술을 구사했으나 3C를 향해 돌진하는 전격전이기 보다 전전선에 걸쳐 일률적으로 동시에 공격하는 소련식 전법을 썼기 때문에 나치독일에 비하면 효율적 전차전을 하지는 못했다. 38선을 넘은 인민군 전차부대가 불과 하루거리인 서울을 그대로 들어오지 않고 의정부 포천등에서 3일을 머뭇거리다가 28일에야 미아리고개를 넘었던 것이다. 독일식 전격전이었다면 6·25 바로 그날 서울은 인민군탱크에 의해 점령당했을지도 몰랐다. 그러나 당시 인민군 T34탱크는 한국군에는 당황 그 자체였다. 초기에 투입됐던 미군도 2.54인치정도의 대 전차포로는 어떻게 해 볼 도리가 없었다. 낙동강전선이 형성되고 패튼전차가 들어와 T34를 제압하면서부터 전쟁이 풀려갔다. T34나 패튼형에 비하면 에이브럼스전차는 왕중왕에 해당한다.
전쟁은 없어야 되는 것이지만 전쟁을 없애기 위해서는 전쟁을 알고 무기를 대비해야 하는 고통이 있어야 하는 것이다.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