읽는 재미의 발견

새로워진 한국일보로그인/회원가입

  • 관심과 취향에 맞게 내맘대로 메인 뉴스 설정
  • 구독한 콘텐츠는 마이페이지에서 한번에 모아보기
  • 속보, 단독은 물론 관심기사와 활동내역까지 알림
자세히보기
세계화와 가족의 문제/이만갑 칼럼(화요세평)
알림
알림
  • 알림이 없습니다

세계화와 가족의 문제/이만갑 칼럼(화요세평)

입력
1995.05.16 00:00
0 0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이 들어 있는 5월은 사회의 기본적인 인간관계를 튼튼하게 다지기 위해서 생각하고 노력할 것을 다짐하는 달이다. 그렇다면 이러한 날들을 제정한 정부는 과연 금년에 얼마만큼의 예산을 투입하여 어떤 사업을 추진하고 있을까. 그리고 과거에 비해서 그런 기본적인 인간관계가 보다 바람직스러운 방향으로 개선되고 있는가를 평가하기 위해 무슨 방책을 세우고 있을까. 또한 정부 다음으로 이 사회가 건전하게 발전하는데 매우 중요한 기능을 수행하고 있는 단체들, 구체적으로 말하면 회사와 공장과 같은 경제단체를 비롯하여 교육기관, 문화단체들은 그것을 위해서 무엇을 해왔고, 또 하려고 하고 있는 것일까. 그냥 별 생각없이 예년에 해왔던 것처럼 하나의 행사로만 지나쳐 버리고 있는 것이 아닐까.기능집단들이 만족스럽게 제 구실을 하려면, 그 기초가 되는 가족이 우선 튼튼해져야 한다. 왜냐하면 인간은 가족에서 태어나 가족에서 배우고 자라서 사회에 진출하여 직업적인 활동을 하기 때문이다. 또 하루 하루의 생활을 따져보면 인간은 가정에서 충분히 휴식을 취하고, 거기서 에너지를 충전하여 직장에 나간다. 만일 가정에 따뜻하게 자기를 받아주는 사람이 없고, 물질적 안락과 정신적 만족을 줄만한 여건이 마련되어 있지 못하면 그만큼 직장생활은 원만하게 이루어질 수가 없을 것이다.

그래서 사회학에서는 가족을 사회의 기본적 단위라고 규정짓고, 가족현상을 바르게 파악하기 위해서 다른 집단현상에 대해서보다도 가족연구에 많은 힘을 기울이고 있는 것이다.

소련이 붕괴한데는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필자가 보는 바로는 공산주의자들이 인간성과 가족에 대하여 잘못된 인식을 가지고 있었다는 것이 주된 이유라고 생각된다. 1965년이니까 바로 30년전의 일이다. 그때 일본에서 제9회 세계가족사회학세미나가 열렸다. 이 모임에는 할초프라는 소련 가족사회학자가 한 사람 참가하여, 소련에 있어서의 이혼문제를 논하였다. 그의 발표가 끝나자 토론자 한 사람이 다음과 같은 질문을 하였다.

『공산주의이론에 의하면 원시공산사회에는 가족이 없었는데 계급사회에 들어가면서 가족이 생겼다. 그리고 앞으로 공산주의사회가 되면 가족은 없어진다. 이러한 주장에 관련해서 귀하의 견해를 듣고 싶다』

이런 질문에 대해서 할초프는 다음과 같은 취지로 답변하였다. 『마르크스는 그런 이론을 내세운 일이 없다(사실 그 이론을 세운 사람은 엥겔스였다). 또 소련정부는 그런 이론에 입각해서 정책을 수립하고 실천한 일도 없다. 다만 코론타이(여성공산주의 이론가로서 소련정부의 교관으로 있었다)가 그런 주장을 했는데 그것이 잘못 인식되어 마치 소련정부가 그 입장을 취한 것처럼 알려지고 있다. 가족은 태고때부터 있었고, 지금도 있으며, 앞으로도 있을 것이다. 가족은 매우 중요한 사회제도이기 때문에 소련정부는 이를 강화하기 위한 법적 조치를 취하고 있다』 그의 답변을 좀 더 부연해서 말하면, 소련은 제2차 세계대전에서 2천만명이나 되는 많은 젊은이를 잃었다. 그 때문에 소련의 가정생활은 불건전해졌고, 나아가 사회 전체에 심각한 문제들을 야기하게 되었다. 이상이 그가 말한 내용이지만 그후 소련정부는 할초프가 말한대로 가족을 강화하는 입법조치를 취하였다. 그러나 이미 때는 늦었던 것이다.

지난 반세기동안 한국의 가족은 크게 변했다. 제한된 지면에 무엇이 어떻게 달라졌다고 자세히 말할 수는 없지만, 변화의 실상은 우리들 모두가 어느 정도 잘 알고 있는 것이다. 그중에는 좋은 점도 적지 않다. 그러나 나쁜 점은 우리에게 심각한 고통을 주기 때문에 매우 뼈저리게 느끼고 있는 것이다.

가정생활의 변화는 주로 공업화에 의해서 생기는 것이다. 공업화는 불가피한 것이었을 뿐만 아니라 많은 좋은 결과를 가져온 것이 사실이다. 물질생활이 풍족해지고 편리해졌다. 그래서 사람들의 수명도 상당히 연장됐다. 반면에 공업화는 환경을 오염하여 인간의 생존 자체를 위협하는 단계에 도달했다. 또 공업화는 기본적 윤리마저 혼란에 빠뜨리고, 조직사회에서의 치열한 경쟁때문에 사람들로 하여금 심한 스트레스에 시달리게 하여 정신생활의 황폐화를 심화시키고 있다.

이러한 기본적 문제를 해결하려면 좁은 학문분야에서 짧은 안목을 가지고 개별적으로 접근해서는 안된다. 그것은 보다 긴 역사적인 안목을 필요로 하며, 총체적으로 다방면에서 힘을 합하여 체계적으로 다루는 것이 긴요하다. 그리고 정부를 비롯하여 기업체와 같은 강력한 기능집단들이 적극적으로 나서서 밀어주지 않으면 성사되기 어려울 것이다.<서울대명예교수·사회학>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세상을 보는 균형, 한국일보Copyright ⓒ Hankookilbo 신문 구독신청

LIVE ISSUE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

0 / 250
중복 선택 불가 안내

이미 공감 표현을 선택하신
기사입니다. 변경을 원하시면 취소
후 다시 선택해주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