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늘의 김정일체제/한국일보 뉴욕지사 이승환기자 방북기/“미도 우리에겐 쩔쩔” 클린턴친서 자랑/체제문제 질문엔 “뭐 압네까” 뜻밖 답변북한에 있는 동안 그쪽 사람들이 내내 자랑하던 것은 미국이 줬다는 「담보서한」이었다. 『미국아이들이 우리에게 꼼짝 못하는 걸 보시라우요. 담보서한을 보면 우리 외교력이 크긴 크지요』
그들에겐 보통명사와 같은 「담보서한」이라는 게 김정일에게 보낸 클린턴 미국대통령의 친서라는 사실을 알아 차리는 데는 꽤 시간이 걸렸다. 지난해 제네바 합의후 클린턴이 김정일을 북한의 최고지도자라고 지칭하면서 경수로건설지원과 핵 선제불사용을 약속한 서한이다.
이 편지 한장에서 북한은 생존의 가능성과 미래에의 기대를 찾으려 하는 것 같았다. 안내원 운전사 의례원은 이 말을 유행어처럼 썼다. 평양축전 개막식날 5·1경기장에서는 15만관중앞에서 「조미합의」 「담보서한」이라는 두 단어가 붉고 푸른 카드섹션으로 새겨지기도 했다. 이는 북한이 미국에게 걸고 있는 외교적 기대라 할 수 있다.그러나 이런 북한의 태도는 「우리식 대로 살겠다」는 또다른 구호와 묘한 불협화음을 이루고 있었다.
평축 참관단 일행은 먼저 북한에 가보았던 사람들의 충고에 따라 김정일개인에 관한 것, 이념에 관한 것은 일체 화제에 올리지 않기로 했다. 북한의 안내원들도 「친애하는 지도자, 최고사령관 각하」등 의례적인 수식어를 제외하고는 우리에게 이같은 화제를 강요하지는 않았다. 방문자나 안내자나 기피하는 화제가 바로 김정일 이었다.
그러나 북한이 이번 평양축전에 해외동포와 외국인을 불러들인 데는 나름대로의 속셈이 있는 것 같았다. 사실 평양에 처음 왔을 때 우리는 평축행사에 왔는지 김일성생일행사에 왔는지 착각이 들 정도였다.
순안공항에서 평양시내에 이르는 가도에 「경축4·15」라고 꽃수를 놓은 대형아치가 서 있는 것을 비롯, 곳곳에는 김일성을 추모하는 대형조형물 투성이였다. 평양축전을 홍보하거나 관광객을 환영하는 플래카드는 단 한개도 없었다.
개막식을 사흘 앞두고서야 겨우 호텔주변에 평축관련 포스터가 나붙기 시작했다.
만경대구역 양강호텔에서 비교적 장시간 관영 중앙TV를 시청했다. 화면은 2시간이 넘도록 생전에 김일성이 김정일을 각종행사 공장 군부대등을 데리고 다니는 장면만을 모아 특집으로 다루고 있었다. 외국인에게 「김일성은 곧 김정일이다」는 등식을 주입시키려는 모습이 역력했다.
인민군 창건50주년인 4월25일 1017부대를 방문하고 평양에서 전군지휘관회의를 주재하는 김정일의 모습은 조금 달랐다. 다른 행사에서의 행태와는 달리 그는 군관들에게 일일이 말을 건네곤 했고, 심하게 표현하면 눈치를 보는 듯했다. 늘 거만한 자세로 앞만 보던 김정일이 군부대에서는 상당히 유연해져 있었다.
김정일은 김일성의 권위를 그대로 이어받았고 이 때문에 미국도 화해의 손짓을 적극적으로 펴고 있다는게 북한정권이 평축을 통해 외국인과 주민들에게 전하려는 가장 큰 메시지였다.
북한사람들은 북한이 지구상에 남아있는 유일한 사회주의국가라는데 큰 자부심을 느끼고 있었다. 하지만 적어도 안내원등 특수층들은 그들이 살고 있는 북한이 어디로 가고 있으며 세계의 조류가 어느방향으로 흐르고 있는지 알고 있는 것처럼 보였다.
북한당국의 요구에 따라 만수대의 김일성동상을 「참배」했을 때도 우려했던 「광신적」인 분위기는 별로 눈에 띄지 않았다. 안내원은 버스로 만수대 언덕으로 이동하면서 『경건하게 행동해 달라』고 여러차례 당부했다. 우리가 동상앞에서 고개를 뻣뻣이 쳐들고 있었지만 별다른 이의제기는 없었다.
15만명 가까운 동원주민들이 5·1경기장주변을 질서있게 오가는 모습을 보고 이들이 대오를 유지하고 경제개발에 전념할 경우 멀지않아 가난을 벗어날 수도 있겠구나하는 생각이 들기도 했다. 그러나 폐쇄된 사회에서 보지 못했고 듣지 못했던 것들을 곁눈질로 알게될 때 이 대오는 하나둘씩 흩어지게 될 것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공민왕릉을 안내했던 한 노인은 남조선에서 올라오면 우리는 일제때처럼 노예처럼 살아야 한다고 말했다. 원산과 개성으로 향하는 차창밖의 곳곳에는 감시원이 서 있었다.
북한사람들에게 내친 김에 체제에 관한 질문을 집요하게 물어보기도 했다. 사전에 철저한 교육을 받았음직한 관광총국의 안내원조차 때로는 대답아닌 대답을 여러차례 반복 했다. 『우리가 뭐 압네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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