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최근 산동·상해방위주 세확장불구 취약/등사후 양상곤중심 지각변동 가능성도중국 군부는 덩샤오핑(등소평) 사후 권력변동의 최대 변수로 꼽힌다. 중국 군대가 고대로 부터 정치변동에 결정적인 역할을 해 온 역사적 배경과 장쩌민(강택민)당총서기 겸 국가주석의 군부내 기반에 대한 현실적 의구심 때문이다. 장쩌민은 대장정의 혁명 1세대가 아니다. 기술관료 출신이다. 그래서 그가 89년 덩에게 발탁될 때 당·정·군 3대 권력기둥 가운데 군내의 기반이 가장 취약했다. 덩 샤오핑과 장쩌민이 안정된 권력승계를 위한 준비 작업으로 군부의 지지를 얻는데 최고 역점을 두어 왔다는 것은 주지의 사실이다.
장은 89년 6월 당 총서기에 선출된지 5개월 만에 당 13기 5중전회에서 중앙군사위 주석에 올랐다. 이후 그는 모두 7차례의 인사이동을 통해 군내에 자기사람을 심어 나갔다. 이른바 「상하이(상해)방」, 「산둥(산동)방」의 형성이었다. 또 92년엔 군부에 막강한 영향력을 행사해온 양상쿤(양상곤)국가주석 겸 군사위 제1부주석·양바이빙(양백빙)인민해방군 총정치부주임겸 중앙군사위 비서장 형제를 축출했다.
장의 군내 기반강화 작업에는 덩샤오핑의 힘과 의지가 크게 작용했다. 덩은 군사위 부주석에 자신의 측근인 류화칭(유화청), 장전(장진)을 임명, 장을 뒷받침 하도록 했다. 그는 또 양가장(양가장)형제 제거작전의 뒷자리에 버티고 있었으며 93년 전군주요지휘관 회의때 장을 중심으로 단결하라고 강조하기도 했다.
그러나 무엇보다 장은 자신과 인연이 있는 군인사를 파격적으로 발탁하면서 세력 불리기에 나섰다. 그는 1급군구 지휘관 이동 및 교체, 상장급(우리군의 대장에 해당) 간부의 승진인사에서 산둥 출신을 상당수 기용했다. 광둥(광동) 출신인 양형제에 반대하는 세력의 결집이었다. 츠하오톈(지호전)당 중앙군사위원 겸 국방부장, 장완녠(장만년)군사위원 겸 총참모장, 장롄중(장련충)해군사령관, 수후이쯔(서혜자)부총참모장, 리징(이경)부총참모장, 리라이쥬(이래주)베이징(북경)군구사령관, 장타이헝(장태환)지난(제남)군구사령관등이 「산둥방」을 이루고 있다. 상장은 모두 25명. 산둥 출신은 9명으로 36%에 이른다. 중국의 성이 22개임에 비추어 「산둥방」의 규모가 얼마나 큰지 짐작할 수 있다. 장쩌민은 상하이시 당서기 재직때 친분을 쌓은 남경군구 간부를 중심으로 또 하나의 군부 울타리를 만들었다. 위융보(우영파)총정치부 주임, 왕청빈(왕성빈)베이징군구사령원, 시유시아오(사옥효) 광저우(광주)군구 정치위 위원, 왕타이란(왕태람)총후근부 부부장, 파충염(파충염)인민무장경찰 총사령원등이 상하이 출신. 이들은 「상하이방」으로 불린다.
하지만 군사전문가들은 덩샤오핑이 죽는다면 중국 군대는 양상쿤을 중심으로 지각변동이 일어날 가능성이 있다고 전망한다. 막강한 권한을 가진 군구사령관들이 성장과 결탁해 군에 분열을 일으킬 위험이 있다는 것이다. 장쩌민이 본격적인 권력투쟁에 나설 경우 그의 군맥이 어떤 힘을 발휘할 지가 주목된다.<손태규 기자>손태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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