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년대 중반 미국사회에는 새로운 세대들이 나타나기 시작했다. 이들은 일체의 고정관념과 당위를 거부하고 오직 사랑과 평화만을 외쳤다. 인도의 명상철학과 약물, 그리고 록음악을 무기로 구세대의 문화와 전면전을 벌였다. 전후 베이비붐 세대인 이들은 개인의 내밀한 자유와 해방을 원했다. 이들이 60년대 청년문화를 대표하는 히피들이었다. 히피들의 패션은 그 자유로운 생각만큼이나 파격적이었다. 이들은 기본적으로 남에게 보이기 위한 치장이나 꾸밈을 거부하고 그저 아무 것이나 마음내키는 대로 입었다. 그중 두드러진 특징은 LSD 같은 환각제의 영향으로 나타난 정신없는 프린트와 가슴을 뒤덮는 요란한 레이스, 노랑 빨강 초록 등의 원색을 이용한 사이키델릭풍이었다. 요가를 비롯한 동양 신비주의에 대한 관심으로 인디언들의 구슬 목걸이나 인도의 자수 블라우스, 아프리카 스타일의 망토 등이 크게 유행했고 「꽃의 아이들」이라는 별명답게 큼지막한 꽃무늬 옷도 즐겨 입었다. 또한 이들은 너나없이 치렁치렁하게 머리를 길렀으며 동그란 안경을 즐겨 썼다. 맨발인 경우도 많았다. 낡은 청바지에 몇겹씩 겹쳐입은 이들의 모습은 얼핏 보아서는 남녀를 구별할 수 없었다. 때로는 반전의식을 표현하듯 군복을 변형시켜 입기도 했다.
이러한 히피들의 옷차림은 기성 디자이너들에게 적지않은 영향을 줬다. 그 결과 67년 이후로는 하이 패션에서도 울과 실크를 소재로 한 할렘 팬츠, 라자 코트 등의 히피 룩이 등장했다. 70년대의 겹쳐입는 레이어드 룩과 92년 이후의 지저분한 그런지 룩도 애초의 근원은 히피들의 거리 패션에서 찾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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