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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의 추도/조성호(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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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장의 추도/조성호(메아리)

입력
1995.05.0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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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신과 마흔두명의 우리 아이들을 이 세상에서 떠나게 한 것이 무엇입니까. 하늘이 무너지고 땅이 꺼진듯 합니다…. 우리들은 압니다. 당신과 우리 아이들을 이 세상에서 떠나게한 것은 잘못이 거듭되어도 반성할 줄 모르는 불성실성과 뻔뻔스러움이라는 것을…」대구 영남중 이길우교장이 지난 1일 교사와 어린 제자 42명의 죽음을 애통하며 읽은 추도사의 구절이다. 교장의 추도사는 잘못이 고쳐지지않고 되풀이되는 이 사회에 대한 한서린 원망을 담고 있다. 청소년의 달인 5월의 문을 여는 이날, 교정은 참담한 슬픔에 잠기고 학생들 교사 학부모 모두의 눈에서는 가슴을 찢는 오열이 흐르고 있었다.

누가 이들에게 피눈물을 흘리게 하는가. 누가 어머니들의 가슴에 영원한 검은 못을 박는가. 전시도 아닌, 평화로워야할 등교길에 왜 어린 학생들이 폭음에 찢겨 죽어야만 하는가.

악몽의 시리즈처럼 멈출 줄 모르고 일어나는 대형사고·사건들. 지지난해도 지난해도 많은 인명을 앗은 대형사건들이 충격이 가실 틈을 주지않고 이어졌다. 그때마다 『아 이럴수가…』하는 비탄이 터지고 세상이 요란하게 들끓다가 『다시는 이런 일이 없어야한다』며 한 막이 내렸다. 그러고는 얼마안돼 또 터지고 같은 소리가 되풀이된다.

『사고원인 철저히 규명해 책임 묻겠다』『다시는 이같은 불행한 사고가 일어나지않도록 하겠다』, 그때마다 정부에선 같은 말이 나오고 요란한 대책이 제시됐다. 사상최대의 가스폭발사고라는 대구가스폭발사건은 그런 박제(박제)된 말이 제대로 나올 틈도 주지않고 또 곳곳에서 가스공포를 확산시키고 있다.

왜 이 지경인가. 영남중 교장은 추도사에서 「잘못이 거듭되어도 반성할 줄 모르는 불성실함과 뻔뻔스러움」을 탓했다. 그것은 사회 국가조직 기업 개인 어디라 할것없이 만연돼 있는 고질적인 부도덕성과 비리, 위험불감증, 인명경시증, 태만, 나밖에는 모르는 극도의 이기주의등 아무리 지적해도 깨칠 줄 모르는 망국적 병리현상에 대한 함축적인 질타일 것이다.

「부끄러운 어른들의 욕망이, 저만 잘 살자는 이기주의가, 부끄러운 어른들의 무책임이, 방종이, 부서지고 무너진 너희의 영혼앞에 어찌 고개 숙일 수 있으랴」 비오는 제자들의 영결식날, 시인인 영남고 윤희수교사가 쓴 조시는 더 적나라하게 이 사회의 모순을 통탄하고 있다.<전국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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