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만명 희생… 휴전종료후 더격화/서방 “제2베트남”우려 개입포기20세기 최악의 민족분규로 불리는 보스니아 내전이 확전양상을 띠고있다. 지난 4개월간의 보스니아 휴전이 종료되는 1일을 전후해 먼저 인근 크로아티아에서 재연된 유혈분규 양상은 보스니아 전역으로 확대될 조짐을 보이며 보스니아 내전이 이제 구유고전역의 전면전으로 비화될지 모른다는 우려를 낳게 하고있다. 지난 36개월동안 20만명의 희생자와 2백30만명의 난민을 양산하며 발칸반도를 피로 물들인 보스니아 사태의 원인과 파장, 전망등을 문답식으로 알아본다.
―보스니아내전의 발발 원인은.
『내전의 도화선은 구유고연방의 해체다. 카리스마적 지도자 티토 사망후 세르비아공화국 주도의 느슨한 연방체제를 유지해오던 유고는 공산주의 종언에 이은 민족주의의 분출로 슬로베니아, 크로아티아등이 차례로 독립하고 세르비아는 몬테네그로등과 신유고연방을 결성했다. 그러나 회교도(40%) 세르비아계(32%·그리스 정교) 크로아티아계(18%·가톨릭)등 3개 민족이 복잡하게 뒤엉킨 보스니아의 독립은 앞서 약간의 진통을 겪었던 슬로베니아등 두공화국의 경우와는 달랐다. 세르비아계가 보이콧한 92년 2월 독립가부 결정선거에서 최대민족인 회교계가 압승하며 독립을 선포하자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가 92년4월6일 수도 사라예보를 포위공격하면서 본격적인 내전이 시작됐다』
―내전의 전개과정은.
『동족인 세르비아공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군사적으로 우세했던 보스니아내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내전발발 1년만에 보스니아영토의 70%를 점령하고 나머지 30%정도를 회교계와 크로아티아계가 차지한채 양측은 치열한 공방전을 계속해왔다. 전장은 주로 사라예보, 고라주데, 투즐라, 비하치등 회교도 밀집거주지역 주변으로 수많은 민간인 희생자가 발생했다. 「세르비아계의 공격과 무차별 인종청소―서방의 공습및 공습경고―협상―결렬」의 악순환을 되풀이 하며 진행된 내전은 내전당사자들의 합의로 올초부터 4개월간 휴전상태를 유지해왔다』
―휴전만료이후 내전이 더욱 격화되는 이유는.
『내전당사자들이 추후 종전협상에서 유리한 고지를 선점하기위해 한치라도 점령지를 넓히려 하고 그동안 전쟁억지력을 발휘해왔던 2만5천여명의 유엔평화유지군이 철수할 움직임을 보이고있기 때문이다. 특히 유엔군중 가장 많은 3천6백명을 파병한 프랑스는 자국병사가 희생당한 4월중순이후 휴전이 연장되지않을 경우 철군하겠다고 경고했었다』
―인근 크로아티아내 분쟁은 보스니아 사태와 어떤 연관이 있는가.
『보스니아 세르비아계와 연대한 크로아티아내 세르비아계는 무장항쟁을 통해 영토의 30%이상을 장악하고 91년 12월 크라이나공화국 창설을 선포했다. 최근 크로아티아정부가 작년 3월 체결된 휴전협정을 깨고 세르비아계 점령지역인 크라이나에 대해 공격하기 시작, 내전이 격화될 조짐을 보이고 있다. 또 보스니아 내전이 재연되면 이제까지 국지전 양상인 유고의 내전이 점차 범세르비아 대 반세르비아간의 대결구도로 발전, 전면적인 발칸전쟁으로 비화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서방은 왜 보스니아 군사개입을 꺼리고 있는가.
『보스니아는 영토의 70%가 산악지대로 이뤄진데다 세르비아계 민병대는 제2차대전시 나치군을 괴롭혔을 정도로 게릴라전에 능하다. 민간인의 피해가 우려돼 공중폭격도 힘든 상황이다. 때문에 보스니아내전이 자칫「제2의 베트남」화할까 우려, 군사개입을 사실상 포기한 상태다』
―유엔 및 서방의 평화협상 시도가 번번이 무산되는 까닭은.
『유엔등은 3차례이상 평화중재안(영토분할안)을 마련해 거중조정에 나섰지만 모두 실패했다. 최근 서방측은 세르비아계가 영토의 49%, 회교·크로아티아계가 51%를 차지하는 보스니아 평화중재안을 마련했지만 현재 영토의 3분의2를 차지하고있는 세르비아계가 현재의 점령지를 양보할 수 없다면서 이를 거부하고있다』<이상원 기자>이상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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