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일보 뉴욕지사 이승환기자 방문기/눈덮인 천지로 지는 낙조 황홀… 저절로 애국가/안내원 “오늘 날씨 개… 운이 좋수다” 반가운 표정눈덮인 천지는 눈이 시리도록 아름다웠다.
돌개바람이라 부른다는 겨울바람이 사람을 날려버릴 것처럼 몰아쳤으나 「민족의 성산」을 북한땅을 통해 올랐다는 감격은 이를 전혀 느끼지 못하게 했다.
지난달 26일 하오 4시30분.
기자는 꿈에 그리던 백두산정상인 장군봉에 올랐다. 중국땅이 아닌 우리땅을 거쳐 백두산에 올랐다는 사실이 감격을 배가 시켜 주었다.
휜눈이 쌓인 천지가 소복을 입은 아낙네처럼 손아래 잡힐듯이 누워 있었고 발 아래 우리땅 쪽으로는 끝을 알 수 없는 설해(설해)가 펼쳐졌다. 안내원은 이 설해가 바로 개마고원이라고 설명해 주었다. 때마침 뉘엿뉘엿 넘어가는 태양이 연출해 내는 낙조는 흰눈에 반사돼 황홀했다. 천지를 가로질러 중국땅으로 지는 태양은 장엄했다. 나도 모르게 애국가가 절로 나왔다. 목이 터져라 불렀고 흐르는 눈물을 주체할 수 없었다.
안내원은 장군봉의 높이가 해발 2천7백50라고 설명했다. 우리가 알고있는 백두산정상의 높이 2천7백44보다 6가 높았다.
장군봉은 색도가 끝나는 향도역에서 걸어서 30여분거리에 있었다. 향도역에서 몇 발짝 걸어가자 천지가 보이기 시작했다. 천지를 보면서 30여분을 걸으면 장군봉이다. 6월달까지도 녹지 않는다는 눈은 1가 넘게 쌓여 무릎까지 빠졌다. 휘몰아치는 바람은 콘크리트말뚝에 쳐놓은 쇠줄을 의지해야만 몸을 가눌 수 있게 했다.
한발짝이라도 잘못 디디거나 돌개바람에 몸의 중심을 잃으면 곧바로 낭떠러지로 떨어져 얼어붙은 천지바닥에 내팽겨치게 된다. 장군봉으로 가는 5백여의 길은 이처럼 험난했다. 백두산에 10월부터 6월까지 입산금지조치가 취해지는 이유가 자연스럽게 입증됐다.
향도역은 이곳에서 1.2 떨어진 백두역에서 일종의 케이블카인 삭도를 이용해 오르도록 돼 있으나 겨울이라 삭도가 운행되지 않아 가파른 길을 1시간 30여분동안이나 걸어야 했다. 70∼80도의 경사진 눈쌓인 길을 숨을 헐떡이며 걸었다. 10차례이상 걸음을 멈추고 호흡을 가다듬어야 했다.
삼지연에서 백두밀영까지는 소형버스를 이용했고 이곳에서 스노모빌로 바꿔타고 백두역까지 갔다. 일본 야마하제품인 스노모빌은 2∼3인승으로 스키선수로 보이는 젊은이들이 운전을 해주었다. 20여분동안 눈이 수북이 쌓인 평평한 길을 조심스럽게 달렸다.
기자등 재미한인산악회 일행 13명은 고려민항전세기를 이용해 26일 하오 1시30분께 삼지연공항에 내려 3시간여에 걸친 백두산등정을 시작했다. 일행을 태운 소련제 구식 쌍발프로펠러기는 25일 평양의 순안공항을 출발할 예정이었으나 백두산에 눈이 많이 내려 출발을 하루연기했다.
삼지연 비행장은 한눈에 군사비행장임을 알 수 있었다. 평양을 출발한지 1시간 20분이 지나자 안내원이 『 저게 바로 백두산…』이라고 큰소리로 외쳤고 비행기는 이내 착륙했다. 공항주변 곳곳에서 격납고가 보였다. 센것만 해도 30여개가 넘었고 격납고 안에는 어김없이 미그전투기가 있었다.
비행기에서 내리자 활주로에 낡아빠진 소형버스가 대기하고 있었다. 자신을 그저 백두산 지역 책임자라고만 밝힌 60대초반의 노인이 우리일행을 안내했다.
두터운 털모자에 털코트를 입은 이 노인은 『어제까지만 해도 눈이 오고 바람이 세차게 불었는데 오늘 날씨가 갰다』면서 『선생님들은 운이 참 좋수다』라고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소형버스는 울창한 삼림속을 냅다 달렸다. 안내를 맡은 노인은 이 도로가 갑산과 무산을 연결하는 「갑무도로」라고 설명했다. 1차선 외길의 포장도로인 이 길을 30여분정도 달리자 김일성이 일제에 항거해 싸웠다는 삼지연전적지가 나왔다. 길옆에는 차창 높이 만큼 눈이 쌓여있다. 군인들이 일행을 위해 제설작업을 했다는 얘기를 듣고 내심 미안한 생각이 들었다.
여자안내원은 녹음기가 돌아가듯이 삼지연전적지를 빠르게 설명했다. 3만여평은 족히 돼보이는 삼지연전적지 정면에는 군복차림을 한 김일성의 대형동상이 서있었다. 이 동상은 평양 만수대 언덕 위에 서있는 김일성 동상 다음으로 북한에서는 큰 동상이라고 했다.
삼지연전적지에서 갑무도로를 한시간여 더 달리자 백두밀영이 나왔다.
일행은 등산복으로 갈아입고 등산장비를 챙겼다.
스노모빌을 타자 주위의 풍경이 일순에 바뀌어 버렸다. 하늘을 찌를듯이 빽빽하게 들어찼던 수해가 일순에 사라지고 나무 한 그루 없이 눈만 보이는 설원이 나타났다.개마고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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