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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낙서/박내부(메아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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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제와 낙서/박내부(메아리)

입력
1995.05.0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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동성연애를 하는 젊은 신부의 고뇌를 그린 영국영화 「사제(PRIEST)」가 가톨릭계의 거센 반발 속에 미국에서 상영되고 있다. 뉴욕대교구의 존 오코너추기경은 『이 영화는 남자화장실의 낙서』라고 분개했다고 한다. 성직자로서 그가 받은 모욕감은 클 것이고, 그의 분노가 누르기 힘들 것이라고 짐작된다.그러나 성직자의 낙서가 아픈 여운을 남기는 프랑스 소설도 있다. 빅토르 위고의 소설 「노트르 담의 꼽추」는 노트르 담 성당의 학식 높은 부주교가 집시 처녀에 대한 사랑의 욕망을 가누지 못해 스스로 파멸해 간다. 자멸을 응시하면서 그는 성당 돌벽에 쓰디쓴 심정으로 「숙명」이라는 낙서를 새긴다. 이 소설은 지금까지 네 차례나 영화로 만들어졌다.

낙서에 대해 일가를 이룬 시인 김대규씨는 『낙서는 볼펜으로 쓴 것 보다는, 볼펜이 없어 못이나 꼬챙이등으로 후벼판 것이 더 가치가 있다』고 감정한다. 후자가 더 절실한 메시지를 지니고 있다는 뜻이다.

낙서는 답답하거나 절박한 상태에서 벗어나게 하는 마음의 비상구이기도 하다. 낙서는 대체로 예기치 못한 곳에서 느닷없이 복병처럼 나타나 우리를 놀라게 하고 또한 정서를 환기시킨다.

옛날 고등하교 3학년이 되어 새 교실의 한 책상에서 보았던 기막힌 낙서가 생각난다. 예언 같기도 하고 잠언 같기도 했던 그 명문―「공든 탑도 무너진다」.

어느 선배가 예리한 칼로 새겼을 그 낙서는 「열심히 공부하라」는 격려인 동시에 냉소적인 유머였다. 그것은 3학년이 된 우리의 불안한 심리를 꿰뚫어 보고 있었고, 삶에 대한 통찰력과 허무주의적인 예감을 깔고 있는 듯했다. 그러나 그 낙서는 또한 촌음을 아껴 공부해야 할 시기에 책상이나 망치고 있는 선배의 처량한 모습을 떠올리게 했다.

낙서를 생산적인 것으로 끌어 올린 예도 있다. 미국의 불우한 흑인 화가 장 바스키아. 울분에 차서 뉴욕 지하철역등에 원시미술 같은 그림을 마구 그려대던 그는 우연히 평론가의 눈에 띄어, 그의 그림이 「낙서화」로 격상되기에 이른다.

그는 팝 아트의 대가인 앤디 워홀과 같은 반열에 올랐지만 명성은 또한 짐이 되었다. 88년 8월 그는 27세로 숨졌다. 사인은 마약남용. 그의 삶은 낙서처럼 지워지고, 유명한 「낙서화」 8백여점은 남았다.<문화2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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