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잇단 외교악재 선거패배 “위기”/야 “아시아의 약골”비난… 여론 악화일로오는 8일 실시될 필리핀총선은 6년 임기중 3년째를 맞은 피델 라모스대통령에게는 중간평가적 성격을 띤 선거이다. 마르코스 장기집권을 민중혁명으로 무너뜨린 코라손 아키노에 이어 92년 5월 11일 대선을 통해 두번째 민선대통령에 취임한 라모스의 국정 수행능력에 대한 국민들의 일반적 평가는 일단 합격점 이상이다.
집권 3년동안 연평균 5%이상의 높은 성장률을 기록하는 경제적인 안정을 이룩하고 정치적 안정도 함께 구축해 국민들의 신뢰는 높다.
그러나 최근 일련의 사태는 선거를 1주일 앞둔 라모스대통령의 심기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그 시작은 지난 3월 17일 싱가포르정부가 필리핀 취업 가정부 플로르 콘템플라시온여인을 살인혐의로 전격 처형한 사건이다. 이 사건은 필리핀인들의 민족적 자긍심에 「분노의 불」을 붙였고 그 화살은 고스란히 라모스대통령에게 날아들었다.
국민들은 정부가 그동안 가난한 사람들을 해외로 내몰고 소수엘리트위주의 경제정책을 펴 이런 사건이 발생했다고 믿고 있기 때문이다.
선거를 앞둔 야당측이 이 빌미를 그냥 놔둘리 만무다. 이 사건은 곧바로 이번 총선의 주요 이슈가 됐고 「싱가포르와 단교하겠다」는 라모스측의 적극 대응에도 불구하고 라모스대통령측에는 치명타가 되고 있다. 민족국민연합(NPC)등 야당은 잽싸게 선거구호를 「콘뎀플라시온여인을 기억하자」라고 정하는등 대정부 공세의 고삐를 바짝 죄고 있다.
이 사건은 그에게 닥친 시련의 서막에 불과했다. 타이완 베트남 중국 필리핀등 주변국이 자국 영토라고 주장하는 난사군도를 둘러싸고 지난 2월부터 발생한 일련의 영토분쟁은 오랫동안 미국의 「안보우산」아래 안주해있던 필리핀정계에 새삼 안보논쟁을 불러 일으키는 악재가 되며 라모스의 발목을 잡고있다.
중국측의 강압적 자세에 비해 유연해 보일 수밖에 없는 정부측 대응과 관련, 야당측은 라모스대통령을 「아시아의 약골」이라고 비아냥거리며 정치적 공세를 늦추지 않고 있다. 올란도 메르카도 상원 국방·안보위 위원장마저 『미군이 철수하자 우리는 군사적으로 완전히 발가벗은 상태가 됐다』면서 이에 가세하고 나섰다. 미 웨스트포인트 육군사관학교출신에 군참모총장을 지낸 그에게는 어쩌면 가정부사건보다 더 곤혹스런 이슈이다.
이와 함께 과격 회교반군조직인 아부 샤이예프가 지난달 4일 대낮에 민다나오섬의 이필시를 무차별 공격해 33명의 시민들을 살해하고 은행을 7곳이나 약탈하고 도시를 방화한 사건에 제대로 대응하지 못한 것도 국민들의 불만을 더한층 고조시키고 있다.
물론 회교분리주의자들의 반란과 난사군도문제 그리고 해외 취업자문제는 라모스대통령 집권이전부터 있었던 문제로 라모스대통령이 전적으로 책임질 것은 아니다.
그러나 1주일 밖에 남지 않은 총선에서 승리해 집권후반기를 안정적으로 이끌어야 할 라모스대통령에게 현재의 사정은 정말로 곤혹스럽기 그지 없다. 특히 현재 야당일색인 하원에서 자신의 경제개혁안이 통과되려면 이번 선거의 승리는 절대불가결한 실정이다.<권대익 기자>권대익>
◎가문·유명세 등 공천 제1기준/족벌정치 구태 판치는 비총선/마르코스2세·라모스조카등 “너도나도 출마”
3백여년의 스페인 통치 잔재가 남아있는 필리핀의 정치판은 출신 가문과 지명도, 유력가와의 친소관계가 선거 당락에 가장 큰 영향을 미치는 일종의 「봉건적 족벌정치」 구태를 아직 벗지 못하고 있다.
족벌체제는 86년 페르디난드 마르코스전대통령이 「피플 파워」에 의해 축출되면서 막을 내리는듯 했다. 특히 귀족명문가출신으로 볼 수 없는 피델 라모스현대통령이 92년 대선에서 승리하면서「족벌 사슬」은 사라진 것 같았다. 그러나 「족벌」이라는 구습은 8일 실시될 총선에서도 여전히 큰 힘을 발휘하고 있다.
이번 총선에서 가장 관심을 끄는 가문은 86년 권좌에서 쫓겨난 독재자 마르코스전대통령 집안이다. 이후 10여년간 몰락의 길을 걸었지만 마르코스전대통령의 아들 마르코스 2세(37)와 미망인 이멜다가 가문의 영광을 재현하기 위해 발벗고 나섰다.
「봉봉」이란 별명을 가진 마르코스 2세는 고향이자 전통표밭인 일로코스 노르테주에서 상원의원직에 도전한다. 92년 하원의원에 당선된 그는 현집권세력의 숱한 방해공작에도 불구하고 상원진출이 무난할 전망이다. 그는 선거유세에서 아버지를 축출한 민중봉기 영웅중의 한사람인 라모스현대통령의 경제정책을 질타하며 세를 모으고 있다. 정부여당 실세들도 예외가 아니다. 라모스대통령은 조카인 란지트 샤하니(28)후보를 자신의 고향인 판가시난주의 하원의원으로 밀고 있다. 당초 그를 주지사 후보로 생각했으나 판가시난주를 「라모스 왕국」으로 만든다는 비판에 직면, 일보 후퇴했다.
코라손 아키노전대통령도 동생 호세부부를 각각 고향 타를라크주 의원과 주지사후보에 올려놓았다. 또 안가라상원의장은 퀘손주에서 여동생을 하원의원으로 밀고 50년대 대통령을 지낸 라몬 막사이사이 가문도 여당공천권을 따냈다. 미군기지가 있었던 수비크만지역은 이 지역(잠발레스주)의 실권자인 리처드 고돈 가문의 왕국이다. 고돈의 아내는 주변 올란가포시 시장을, 동생은 하원의원을 겨냥해 뛰고 있다.<이진희 기자>이진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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