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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민병용 통일문제연구소연구위원(남과 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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두만강/민병용 통일문제연구소연구위원(남과 북)

입력
1995.05.0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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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국 연변의 경기는 5월이 되면 활기를 되찾기 시작한다. 조선족이 몰려사는 연길시내가 복숭아꽃으로 붉게 물들어지면 한국에서 오는 관광객의 발길이 크게 늘어나기 때문이다. 한많은 두만강을 구경오는 단체손님, 백두산에 오르는 관광객등 조용하던 도심이 흡사 「작은 서울」 처럼 북적거리기 시작한다. 4월의 마지막 주일, 연길의 호텔들은 새단장을 하느라 바빴다.상점에는 손님을 기다리는 마음이 가득했다. 연변사람들은 한국 경제가 갈수록 좋아질 것이라고 믿고 있다. 이곳을 찾는 관광객이 지난해보다 훨씬 늘어날 것이라는 기대섞인 희망이다.

지난 10여년동안 연변조선족의 경제는 빠르게 성장했다. 중국내 56개 소수민족중에서 해외진출, 개인예금고, 사업신장등이 가장 두드러진다.

중국인들마저도 부러워할 정도가 됐다.

물론 이렇게 좋아지기 까지는 3번의 계기가 있었다는게 연변사람들의 설명이다.

그 첫번째로 북한과 보따리장사를 꾸준히 해온 것을 든다. 90년대 초까지는 두만강을 통과하는 국경장사가 그런대로 꽤 재미를 보았다. 많을 때에는 한달사이 5천∼6천명의 조선족이 북한을 오갔다는 것이다. 일주일가량 장사를 다녀오면 중국돈으로 4천원(한국돈 40만원)을 벌었다고 한다.

그러나 지난해 김일성사후 급격히 국경출입이 제한돼 장사는 이제 한물이 갔다.

두번째로는 소련땅에 들어가 각종 야생모피를 사다가 파는 장사였다. 이는 보따리장사보다 양이 큰 대신 장사꾼들의 숫자는 많지 않았다. 소련이 망하면서 이 장사 역시 시들해졌다. 세번째가 가장 결정적인 것인데 한국에 가서 돈을 벌어 오는 것이다. 92년 중국과 수교후 한국바람이 연변에도 세차게 불었다. 너도나도 돈을 벌러 서울로 갔다. 출국수속은 하늘의 별따기만큼 어려웠지만 서울행에 성공하면 돈방석에 앉을 수 있었다.

웬만한 연변 교포들은 한번씩 한국에 다녀왔다. 요즈음도 젊은이들 사이에는 한국에 일하러가는 것이 선망의 대상이다.

연길공항에서 만난 유씨(46세)라는 조선족 운전사는 『5년전 한약을 팔러 서울에 갔다왔다. 그때 번돈으로 이렇게 택시를 샀다. 내년봄쯤 다시한번 또 나갈 생각』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한다.

한편 서울로 가겠다는 사람들이 무분별하게 늘어나자 연변의 조선족지도자들은 체계적인 노무송출사업에 착수했다. 그들은 곧 한국을 방문, 관계당국과 업계를 찾아 구체적인 인력수급계획을 설명할 계획이다. 불법체류와 취업사기등 연변조선족의 이미지실추를 막기 위해서이다.

하지만 연변의 조선족들은 단기적인 노무송출보다는 장기적으로 남북관계가 정상화되기를 바라고 있다. 하루빨리 경수로 문제가 해결되고 통일을 위한 새 분위기가 뿌리 내릴 날을 기다리고 있는 것이다. 「남도 조국 북도 조국」이라는 이들은 두곳을 자유로이 오갈 수 있기를 고대하고 있다.

중국내 소수민족중 통일한국의 자랑스런 후예로 뻗어나가기를 바라고 있다.【연길에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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