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구 지하철공사장 가스폭발사고는 우리가 얼마나 위험한 사회에 살고 있는가를 다시한번 일깨워주고 있다. 얼마전에 일어났던 미국의 연방건물 폭파사건과 동경 지하철 독가스테러사건 등으로 세계가 뒤숭숭한 가운데 일어난 우리의 사고는 이 시대의 한 단면이기도 하다.세계가 지금 다함께 고민하고 있는 것은 불확실성의 공포다. 예전과 달리 인간을 살상하는 무기체계는 가시적인 것으로부터 비가시적인 것으로 바뀌었다. 총이나 칼이나 대포와 같이 분명한 실체를 가지고 특정한 대상을 향해 쓰는 경우와 달리 원격조종폭파장치라든지, 화학전, 생물전의 도구들은 인간이 미처 예상하지 못하는 곳에서 불특정다수를 향하여 익명의 공격을 가하는데에 사용되고 있다.
분명한 이데올로기 대립에 의하여 적과 우군이 확실히 구별되던 냉전시대가 사라진뒤 다양한 신념과 종교, 인종적 갈등등이 세계의 도처에서 만들어내는 위협은 그 존재의 불확실성 때문에 사람들을 전전긍긍하게 만들고 있다. 언제 누가 자기와 아무런 직접적 상관관계가 없는 일 때문에 재난을 당하게 될지 알 수 없는 일이다.
같은 불확실성의 시대에 살고 있다고 하더라도 대구의 사고는 질적으로 미국과 일본에서 일어난 사건과 차원을 달리한다. 어떤 특정 종교집단이나 신념집단이 치밀한 계획 아래에서 저지른 테러사건이 아니라 단순히 부주의에 의하여 일어난 사고이기 때문이다. 가스도 방사능과 마찬가지로 가시적이지 않은 성질을 가지고 있다. 현대사회로 올수록 비가시적인 재화의 숫자는 늘어난다. 이러한 비가시성이 가져오는 불확실성을 제거하기 위해 사회는 체계화되었으며 일의 책임과 권한을 분명히 명시하고 있다.
대구의 사고는 불확실성으로 대변되는 세계적 위험과 더불어 우리사회의 비체계성이 합하여 만들어낸 재앙이다. 여객선 침몰사건, 항공기 추락사건, 성수대교 붕괴사건등 지나간 사고가 하나같이 보여주는 우리사회의 문제는 책임의 소재가 불분명한 행정과 아무런 윤리의식없이 일하는 우리사회의 직업관 및 위험성이 산재하고 있어도 이에 체계적으로 대비하지 못하는 우리사회의 비체계적 질서다.
이와같이 사고가 계속되어도 정부는 계속 국민에게 사과만 하고 대통령이 아무리 사고방지를 강조해도 공직사회의 기강확립이 이루어질 기미는 보이지 않고 있다. 그렇다면 우리사회의 사고 위험성은 계속 상존할 수밖에 없다.
이제 과학적으로 밝혀진 사회적 원인을 근본적으로 고칠 것인가 아니면 눈앞에 보이는 지엽적인 처방만으로 불확실성의 시대에 대처할 것인가의 선택이 남았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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