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빼어난 문체… 미 「이민자 소설」새장/교포사회 빛과 그늘 예리한 해부/비평가 격찬… 「북클럽」 신인상도미국 주류사회에서 아시아계 작가의 소설은 이국 문화에 대한 잠깐의 호기심이나 흥미의 수준을 넘지 못하는 게 사실이다. 언어와 문화의 장벽이란 그처럼 강고해서 아무리 「제나라 말처럼」영어를 한다 해도 막상 문학으로 견주게 되면 생래적 한계에 부닥칠 수 밖에 없게 되는 것이다. 그런 점에서 소설 「네이티브 스피커(모국어를 말하는 사람)」는 확실히 변종이다.
수려한 문장과 시적인 표현력, 탄탄한 구성이 거짓말처럼 독자를 빨아들이는 이 작품은 젊은 재미교포작가 이창래(29)씨의 첫 소설이다. 작가는 이 소설을 통해 한인 이민사회의 고뇌에 찬 삶을 다루면서도 「이민자 소설」이 빠지기 쉬운 한계와 함정을 훌륭히 극복하고 있다.
그는 미국인들도 질투할 정도의 빼어난 영어문장을 구사하면서 상류사회를 포함해 현대 미국인들이 갖고있는 보편적 정서와 감정체계를 유연하고 능숙하게 꿰뚫고 있다.
소설은 과묵하고 감정 노출을 극히 삼가는 한인1세 아버지를 통해 전형적인 유교전통을 이어받은 헨리 박을 중심으로 펼쳐진다. 주인공의 아버지는 자식을 위해 엔지니어직을 포기하고 식품점을 경영해 부를 축적한다. 아들을 최고의 학교에 보내고 부유층 지역에 저택을 구입하는등 온갖 정성을 다 기울이지만 헨리 박은 기대를 저버리고 사설 스파이라는 직업을 갖게 된다.
헨리 박은 뉴욕 시의원이자 뉴욕시장 출마설이 나도는 한인 1세 정치가 존 광에 대한 스파이 임무를 띠고 그의 선거운동진영에 자원봉사자로 침투한다. 같은 한국인이라는 이유로 그에게 관대한 존 광에게서 중요한 정보를 빼내면서 헨리 박은 점차 자신이 한국인이라는 자각을 하게 된다. 헨리 박은 너무나 한국적이면서 동시에 너무나 미국적인 두개의 이질적인 세계속에서 갈등없이 성공적인 삶을 살고 있는 존 광에게서 알 수 없는 질투와 존경심을 함께 느끼게 된다. 헨리 박은 그러나 학교 교육과 가정교육의 틈바구니에서 형성된, 스스로도 어쩔 수 없는 이중적인 성격 때문에 자신의 의지와 달리 존 광을 파멸로 이끄는 반역자의 길을 걷게 된다.
한인 이민사회를 때로는 아름답게 때로는 잔인할 정도로 정확하게 스케치한 이 소설은 한인 1세들도 미처 파악하지 못한 한국인의 성격에 대한 탁월한 묘사를 보여주고 있다. 이 소설은 또 정치와 조직폭력등 현대사회가 안고 있는 숨가쁜 문제들에 정면 대결하면서도 주인공에 대한 독특하고 치밀한 성격묘사를 통해 독자들에게 시적인 감동을 안겨주는, 소설적 성취를 이루고 있다.
이 소설은 이미 여러 비평가로부터 극찬에 가까운 평가를 받았으며, 뉴욕 타임스등 각종 권위있는 신문과 잡지의 북 리뷰에 빠짐없이 올랐다. 또 「퀄리티 페이퍼백 북 클럽」이 수여하는 일종의 신인 소설가상인 「뉴 보이스」상도 수상했다.
3살때 정신과 의사인 아버지를 따라 미국에 온 이씨는 5살 때 영어 한마디 못하는 상태에서 학교에 들어갔다. 이때부터 자신의 의사표현은 하지 않고 남의 이야기와 행동을 유심히 듣고 살피는 습성을 갖게됐다. 이 관찰자적 태도가 소설가 이창래의 탯줄이 됐다.
작가는 뉴욕의 깔끔한 부자동네인 웨스트체스터에서 자라났지만 아버지를 따라 한국인들의 땀과 체취가 짙게 밴 플러싱의 한국인 교회에 갈 때가 가장 신이 났다. 이곳에서 떡과 김치를 나눠먹으며 고향의 정취를 느꼈다.
유년 이창래의 「이름찾기」는 작가의 정신을 단면으로 비춰주는 확대경이다. 학교에 막 들어가고 나서였다. 어머니의 권유로 영어이름을 가지려고 무던히도 노력했다. 오랜 기간을 두고 자신의 성앞에 그레그·피터·보비·크리스·데이비드·마이크·제임스·척·레이 등 별별 이름을 다 붙여봤지만 어느 것도 자기 이름 같지 않았다. 그래서 결국 창래라는 이름을 간직하게 됐고, 그 이름으로 작가가 됐다.
미국 최고명문 기숙학교 필립스 엑스터 아카데미와 예일대(영문학 전공)를 졸업한 뒤 오리건 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받고 이 대학 문예창작과 조교수로 재직중인 이씨는 일제때 정신대로 끌려갔다가 지금은 로스앤젤레스에 살고있는 한 한국여인의 삶을 조명한 두번째 소설을 준비하고 있다.<뉴욕지사=김인숙 기자>뉴욕지사=김인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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