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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망상/고영환(서울에서 본 평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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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정일의 망상/고영환(서울에서 본 평양)

입력
1995.04.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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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람이 사람을 죽도록 미워하고 증오하면 오뉴월에도 서릿발이 선다는 말이있다. 북한에서 태어나 자라난 나는 한번도 본 적이 없던 남한사람을 그토록 미워하였다. 나의 눈에 비친 남조선사람은 「인간이기를 포기한 짐승과 비슷한」 그러한 사람이었다. 남한은 나에게 있어서 「삼천리금수강산을 미제와 일본군국주의에 팔아먹지 못해 안달하는 관료들, 배부른 자본가들, 북침야욕으로 잠못이루는 백만남조선군대와 팔백만명에 달하는 예비군들, 채찍을 맞아가며 일하는 노동자들, 미군구두를 닦아가며 공납금을 버는 국민학생들, 학비를 벌기 위해 피를 파는 대학생들, 식구를 먹여 살리기 위해 몸을 파는 가정주부들, 이 모든 인간군상들이 하루하루를 아귀같이 울부짖으며 살아가는」 사람이 살지 못할, 그래서 깨끗이 쓸어버려야 할 「조국남반부」에 불과하였다.

 외국에 외교관으로 나가 일하게 되면서 접하게 된 남한사회의 발전상 역시 선입관이 하도 강하게 작용해 애써 믿으려 하지 않았고 발전된 면보다 부끄러운 면이 더 많으리라는 확신 비슷한 것도 있었다.

 나에게 이러한 확신과 믿음을 준 것은 북한에서 받은 교육과 선전이었다. 그러나 서울을 비롯하여 남한각지를 다니면서 목격한 현실은 너무나도 달랐다. 청계천을 가보아도 판잣집은 없었고 의정부의 동두천을 가보아도 미군구두를 닦는 어린 학생들도, 먼지를 뽀얗게 날리며 미치광이처럼 달리는 미군트럭도 없었다.

 아침은 개성에서, 점심은 평양에서, 저녁은 신의주에서 먹겠다는 「남조선괴뢰군」도, 북조선의 땅을 다시 찾겠다고 이를 가는 월남자들도, 북조선 땅을점령하면 가정주부들을 농락하겠다고 벼르는 「남조선반동」도 없었다.

 특히 충격적인 것은 남한주민 절대다수가 김부자나 오진우같은 몇몇 사람을 빼놓고는 북한동포 전체가 좋은 사람이고 「철천지원수」가 아니라고 믿고 있다는 사실이었다.

 북쪽에서처럼 통일이라는 낱말이 조국이니, 겨레니하는 거창한 말들과 합성되지 않고 『김정일이 속을 터놓고 진실하게 대화에 응하였으면…』 『죽기전에 금강산을 한번 구경했으면…』『싸우지 말고 평화롭게 같이 살았으면…』하는 식의 극히 생활적이고 통속적인 소원으로 인식되고 있다는 사실이 놀라웠다. 이러한 충격적인 현실을 목격하면서 나는 속아 살아온 30여년이 너무나도 아까웠고 분노까지 느껴졌다.

 지난해 7월 김일성이 사망한후 김정일정권의 대남한비난과 주민들 사이에서의 대남적개심 고취는 그 유례를 찾아볼 수 없게 강화하고 있다.

 그러나 북한의 선전선동행태는 분명히 바뀌고 있다. 미국적인 모든 것을 그토록 모욕하고 능멸해오던 북한의 매스컴은 미국에도 좋은 사람들이 적지 않다는 논조로 바뀌었다. 그리고 이와 비례해 대남비난공격이 높아지고 있다.

 합법적인 선거를 통해 선출된 대통령및 그의 정부와 군대를 상식이하로 깎아내리는 김정일의 저의는 다른데 있는것이 아니다. 사회주의낙원을 기대하던 북한주민들에게 강냉이가루와 벼를 섞어 끓인 죽밖에 먹이지 못하는 그래서 정권의 붕괴를 우려하는 김정일의 마지막 시도인 것이다. 그러나 한두사람도 아닌 2천만명을 환상의 테두리안에 가두어놓고 오래 오래 살아가려는 지도자의 생각은 망상일 뿐이다. 또 이러한 인식이 바로 남북통일에 거대한 장애를 형성하고 있다.◇약력

▲53년도 자강도 강계출생

▲평양외국어대학 불문과졸업

▲주자이르북한대사관·몽골대 사관참사관

▲91년5월2일 귀순

▲북한문제조사연연구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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