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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하다”/작년부터 유행한 냉소적 유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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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썰렁하다”/작년부터 유행한 냉소적 유머

입력
1995.04.2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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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말이 안될수록 말이되는 허망한 내용/여러가지 손동작 사용 무안주기도/과도한 자극에 노출된 세태 역설적 저항 대학가 호프집 한구석에서 무료한 표정의 남자대학생이 여자친구에게 불쑥 말을 던진다. 『우리나라가 잘 되는 이유는 DJ 덕이며 DJ DOC(댄스뮤직그룹)은 도널드 덕과 형제다』. 마주앉은 여대생이 아무렇지 않게 『썰렁하다』고 말을 받고는 둘은 곧 폭소를 터뜨린다.

 기성세대들로서는 재미있는 유머도 아니고 의미있는 내용도 아닌 이들의 대화내용이나 웃음의 의미를 도무지 짐작하기 힘들다. 말같지 않을수록 오히려 말이 되는 그 무의미함과 허망한 내용이 그저 어처구니없을 뿐이다. 그러나 「썰렁하다」는 표현은 종전의 「최불암 시리즈」나 「덩달이 시리즈」따위의 유행어차원을 넘어 신세대의 일상적 대화를 지배하고 있을만큼 일반화하고 있다. 나아가 「무자극의 자극」이라는 이 역설은 신세대의 의식과 문화를 규정하는 한 상징으로까지 받아들여지고 있다.

 「썰렁함」은 다양한 동작으로도 표현된다. 동작은 크게 펭귄유와 손가락유로 나뉘는데 펭귄류는 극한지 동물인 펭귄의 특징적인 행동을 흉내냄으로써 썰렁하다는 느낌을 표현하는 것이다. 한손으로 펭귄목을 쥐고 다른 손으로 꼬리를 잡는 시늉이 가장 흔한 형태다. 「당신의 썰렁함에 무릎을 꿇어 경의를 표한다」는 예의바른 표현은 손가락류에 속한다. 검지와 중지를 두다리 삼아 손바닥 위에서 마디를 굽히는 식이다.

 신세대들 사이에 자연스럽게 통용되는 표현동작은 10여가지가 넘는다. 그러나 갈수록 변형되고 있는 것을 감안하면 정확히 몇가지의 동작이 개발됐는지 또 앞으로 얼마가 더 나올지는 예측할수 없다.

 「썰렁현상」이 유행하기 시작한 것은 94년초부터다. 웃기지 않기 때문에 웃을 수밖에 없었던 93년의 「허무시리즈」를 계승한 것이다. 잔뜩 웃을 준비를 한 결과가 실소로 끝나버리는 「허무시리즈」의 피동성에서 벗어나 적극적으로 재미없음을 강조하는 형태로 발전시킨 것이다.    

 「썰렁하다」는 표현은 대화에서 서로 다른 두가지 역할을 한다.  웃겨보려고 노력한 사람의 체면을 세워주기 위해 억지로 웃도록 하기도 하고 아예 재미없음을 강조해 무안을 주는데 사용되기도 한다.

 「썰렁현상」이 만연되는 현상을 놓고 전문가들의 해석도 분분하다. 『인간관계가 표피적이어서 겉돌고 있기 때문이다』라는 전통적 해석이 있는가 하면 구소련의 몰락과 그에 따른 90년대 젊은이의 방황이 낳은 필연적 결과라는 진보적(?) 분석도 있다. 경희대 서정범(69)명예교수의 『웃을 일도 박수칠 일도 별로 없는 냉소적인 세태의 반영』이라는 진단은 전통적 분석의 한 예이다.

 이에 비해 이대부속병원 신경정신과 이근후(60)교수는 『웃음과 농담은 희귀함에서 비롯된다』며 『그러나 성이나 폭력등의 과도한 자극에 지치면 오히려 웃기지 않은 비자극적인 것이 웃음의 소재가 된다』고 심리적인 해석을 하고 있다.

 신세대 사이에 폭발적으로 확산되고 있는 「썰렁현상」은 싫든 좋든 90년대 우리사회를 특징짓는 한 「사회적 현상」으로 자리를 잡아가고 있다.<조철환·박일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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