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방후 한국은 미·소에 의해 강요된 냉전의 한쪽 극에서 살아 왔다. 그래서 보수우익의 사상과 운동이 우리의 체제이념을 형성해온 것이 사실이다. 오늘날 시장경제의 세계대세를 보면 자본주의와 자유주의는 퍽 다행스런 선택이었다. 그런데 정작 이 대한민국을 이끌어온 역대대통령 가운데 아직도 교과서에서 좋게 묘사되는 인물이 없다. 왜 그럴까. 요즈음 갑자기 부각되고 있는 고 이승만대통령에 관한 논의에서 우리는 무엇을 배워야 하는가.
과학자나 예술가와는 달리 정치가, 그것도 권력을 잡고 한 시대를 풍미했던 정치가에 대한 평가는 참으로 어렵다. 과학자의 발명이나 예술가의 창작은 대체로 그 개인의 천재적 영감과 피땀어린 노력의 산물이다. 그러나 정치가의 업적은 조직과 집단수준의 갈등과 화해, 적과 동지의 투쟁, 공존, 타협등 복잡한 상호작용 속에서 이루어지는 것이며 그 평가도 역사관이나 당시의 시대상황에 따라 다르기 마련이다.
탁월한 보수정치가인 처칠에게도 냉전의 장본인이라는 악평이 따라다니고, 한때 많은 모스크바시민들이 불세출의 혁명가 레닌의 동상에 계란세례를 퍼부었다. 또한 정치가의 경우 권력을 잡기 전과 후를 같은 기준에서 평가해서도 안된다. 전세계의 찬사를 한 몸에 안고 있던 폴란드 자유노조운동의 영웅 바웬사도 대통령이 된 후부터는 어쩐지 초라해 보인다. 우리나라에서 김구 선생에게 보내는 광범한 존경은 어쩌면 권력투쟁의 희생으로 끝난 그의 도덕성 때문인지 모른다.
애당초 권력은 존경과는 거리가 먼 것인가. 무엇보다도 한 나라의 대통령이나 총리는 개인으로서 따지기보다는 역사로서 이해하는 것이 온당한 것 같다. 정치가를 역사로서 파악한다는 것은 그 정치가에 관한 역사적 사실을 있는 그대로도 확인한 다음 그 사실을 해석 평가하는 것을 의미한다. 랑케의 말처럼 확인된 사실은 신과 같은 권위를 가지기 때문에 합의에 도달하기 쉬우나 그 해석과 평가는 역사관과 시대정신에 따라 흑과 백으로 나뉠 수도 있다. 따라서 이승만에 관한 사실의 발굴은 그 자체로서 이승만연구에 불가결한 작업이다. 더욱이 이승만과 같이 전근대와 근대와 현대를 모두 살아온 정치가의 경우는 사실의 인식과 해석에 있어서 엄밀성이 요구된다. 오랜 독립운동과 대한민국수립의 최고 책임자라는 사실만 가지고도 이승만은 한국현대사에서 빼놓을 수 없는 존재이기 때문이다.
나는 1960년 대학입학과 동시에 이승만체제에 비판적인 학생서클에 가입한 바 있고 4·19때는 이승만정권의 타도를 부르짖으며 중앙청 앞까지 시위한 경험도 있기 때문에 그에 대한 부정적 고정관념이 몸에 배어 있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지금까지 발굴된 1차 자료만 가지고도 그가 독립운동의 지도자로서 우뚝 선 인물임에 틀림없으며 우리는 그의 카리스마적 리더십에서 발군의 면모를 볼 수 있다. 그래서 8·15직후에는 보수우파세력은 말할 것도 없고 좌파세력, 특히 박헌영과 같은 공산주의자들도 이승만을 3천만민중의 지도자로 추켜세웠다. 8·15와 함께 급조된 「인공」의 중앙인민위원회까지도 「독립조선의 위대한 지도자」 이승만을 주석으로 추대한다고 밝힐 정도였다.
그러나 8·15후 이승만의 국내정치는 민족주의와 민주주의 그 어느 시각에서봐도 비판받아 마땅하다. 우선 일본식민통치의 잔재청산이라는 민족주의의 과제를 실천함에 있어서 이승만의 정책은 정통성을 잃고 말았다. 그는 반공·편의주의의 관점에서 일제시대의 인사를 기용했으며 언필칭 항일이라는 상징을 구사하면서도 실제로는 일제의 인적, 물적 유산을 재편성했다. 그리고 3·15부정선거로 상징되는 이승만정권의 구조적 부패는 4·19혁명을 유도하기에 충분했다. 현대한국의 민주화운동은 이승만정권하의 반독재운동의 연장선위에 있다는 점을 그 누구도 부인할 수 없다. 이승만에 관한 자료를 발굴하는 것과 4·19묘역을 성역화하는 것은 모순하지 않지만 그가 해방한국의 전략과제였던 평화통일, 산업화, 그리고 민주화에 의미있는 공헌을 했다고 평가할 수는 없다.
이승만의 파란만장한 삶은 일제 식민통치에 이어 미소냉전으로 분단된 조국의 영욕 바로 그것이었는지 모른다. 누가 뭐래도 이승만은 한국사에서 오래도록 논쟁할만한 중량급 정치가임에는 틀림없다. 그러나 그는 우리 정치의 모델로서가 아니라 어디까지나 교훈으로 되새겨야 할 인물이다.<고려대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고려대교수·한국평화연구원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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