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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노동자의 삶에 대한 회한 실감 묘사(소설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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늙은노동자의 삶에 대한 회한 실감 묘사(소설평)

입력
1995.04.19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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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선옥의 「우리들의 고향」 지난 시대에는 민중적 현실을 다룬 작품이 흔해 빠져서 탈이더니, 요즘 작가들은 민중의 삶에 둔감한 것이 문제다. 과연 이래도 좋을 만큼 민중적 삶의 질은 향상되었는가? 민중의 삶과 교섭없는 문학은 결국 그 문학 자체마저 파괴할 것인데, 그것은 지난 시대의 위대성과는 비교가 되지 않을 만큼 허약해진 선진자본주의국들의 고급문학의 현재 위상이 단적으로 증명할 터이다.

 이 점에서 나는 공선옥씨의 「우리들의 고향」(소설과 사상 봄호)에 주목한다. 이 작품에는 노동자가 등장한다. 그런데 그는 이미 청춘의 노동자가 아니라 삶의 뼈저린 무의미성에 무방비적으로 노출된, 늙어버린 노동자다. 자신의 삶에 대한 실존적 위기(실존적 위기)의 엄습은 40대의 남자들에게 두루 나타날 수 있는 것이지만, 이 작품의 주인공이 겪는 정체성의 위기는 조금 각별하다는 점에 유의해야 한다. 그는 우리 시대의 평균적인 노동자의 행보를 보여준다. 어린 시절 부모를 따라 농촌을 떠나 서울의 변두리로 올라와 부모는 「전쟁같은 삶을 살다가 끝내 밑바닥을 헤어 나오지 못한 채 단칸 셋방에서 눈을 감고」, 어린 나이에 봉제공장에 들어가 아내를 만나고, 「십대 시다부터 시작된 봉제공장 인생이 어느덧 사십대도 중반에 이른 지금」 그는 겨우 「이곳 공장지대에 5층짜리 서민아파트를」 마련했던 것이다. 어렵게 획득한 상대적 안정 속에서 그는 오히려 자신의 삶이 「한줌의 쓰레기」라는 깊은 공허감에 시달린다. 이 위기의식은 어디에서 말미암는가? 바람에 쓸려온 전단의 글귀 <쏘비에트연방공화국은 죽었지만 남한 노동자 전사는 살아 있다> 를 읽고 쓴 웃음을 짓는 장면에서 뚜렷이 드러나듯이 총자본의 전지구적 행진(전지구적 행진) 속에서 이제 노동자의 삶에 상승의 출구가 막혀 있다는 쓰디 쓴 인식에 연유하는 것이다. 여기에서 그는 자신의 삶의 무의미성을 구원하기 위해 귀향을 시도한다. 그러나 이미 그에겐 돌아갈 고향이 없다. 농촌도 이미 자본에 포섭되어 버린 지 오래이기 때문이다. 작가는 오늘날 진퇴량난의 위기에 내몰린 노동자의 삶을 실감나게 그림으로써 이 문제에 대한 우리 문학의 창조적 관심을 촉구하고 있는 셈이다. 그런데 이 작품의 끝부분은 작위적이다. 고향에서 만난 별장 주인을 꼭 주인공의 옛 사장으로 설정할 필요가 있을까? 쫓겨난 공장에 콜라병 들고 쳐들어 가는 마무리도 역시 자연스럽지 못하다. 과연 80년대식을 넘어설 창조적 대안은 무엇일까? 이것이야말로 90년대 문학의 진정한 도전이다. <최원식 인하대교수·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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