엔고를 어떻게 이용할 것인가. 일본의 무역흑자로 비롯된 엔고는 세계경제를 어렵게 할 것이라는 데 많은 사람들이 의견을 같이 하고 있다. 엔화값의 상승은 일본 상품의 경쟁력을 떨어트려 일본에 불황과 제조업 공동화현상을 초래하고 일본의 불황은 전세계에 파급돼 세계경제를 위축시킬 우려가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나라와 관련해서는 엔고가 우리경제를 재도약시키는 계기가 된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물론 엔고로 일본서 사들여와야만 하는 각종 제품 값이 올라 우리경제에 부담이 늘어나는 측면이 없지는 않지만 그래도 잃는 것보다는 얻는 것이 많다는 지적이다. 이는 일본이 맡아온 주요상품공급기지 역할을 우리가 대신할 수 있을 것이라는 분석에서다.
하지만 엔고로 인한 우리경제의 호기를 제대로 이용못할 경우 엔고호황은 「반짝경기」로 그칠 가능성이 크다. 당장에는 별다른 노력없이 엔고로 인한 과실을 따먹을 수 있겠지만 엔고가 멈추면 다시 원래의 모습으로 돌아갈 수 있다는 것이다. 어쩌면 엔고호황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해 지금보다 더 어려운 상황을 맞을 수 있다는 경고도 없지 않다.
엔고는 이번이 처음이 아니다. 85년부터 4년간 엔화가 2백50원에서 1백20엔으로 폭등하는등 소위 3저현상에 힘입어 우리나라는 사상처음으로 무역흑자가 1백억달러를 넘는 대호황을 누리기까지 했다. 그러나 불과 몇년 사이에 무역수지가 다시 적자로 돌아서고 심각한 불황을 걱정해야했던 것이 우리의 현실이었다. 단군이래 처음이었다는 호황이 한 순간에 물거품이 된 것은 엔고의 뒤처리를 제대로 못했기 때문이다. 막대한 무역수지흑자를 뒷날에 대비하는데 사용하는 슬기로움을 보이지 못하고 오히려 흥청망청 마구 사용하는 바람에 부동산값이 뛰어오르고 과소비의 광풍이 불어닥쳐 나라를 총체적 위기로까지 몰아넣기도 했었다.
그 여파는 지금도 계속되고 있다. 사회간접자본 투자를 게을리해 부산항에 배가 들어올 수 없을 정도로 항만적체현상이 심화하고 약간의 가뭄에도 물이 부족해 아우성을 쳐야하며 도로의 적체로 물류비상이 계속되고 있는 것도 당시의 호황을 우리경제의 구조조정과 체질개선에 이용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번의 엔고에서도 비슷한 상황이 예견되고 있다. 엔고가 계속되고 경기가 호조를 보이면서 우리기업들은 설비투자를 대폭 늘리고 있으나 이는 생산능력확대를 위한 것일 뿐 경쟁력을 근본적으로 강화할 수 있는 합리화와 자동화, 연구개발에 대한 투자는 아니기 때문이다. 산업은행조사에 의하면 우리기업들은 올해 설비투자를 지난해보다 49.2% 늘려잡고 있지만 이 가운데 자동화를 위한 설비개편투자비중은 16.6%, 연구개발투자비중은 6.4%에 지나지 않는 반면 설비능력확대를 위한 투자가 64.7%나 차지하고 있다.
지난해 일본기업들의 총투자중 33.6%가 설비확충투자였으며 자동화와 연구개발투자가 각각 17.2%와 9.2%를 차지한 것과 큰 차이가 있는 것이다. 일본이 경제대국이 될 수 있었던 것은 이같은 지속적인 연구개발투자와 기술혁신때문이다.
이번 엔고를 우리경제의 체질을 개선하는 기회로 삼기위해 정부와 기업이 남다른 노력을 기울여야만 한다는 주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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