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라톤,여명기 견인역으로/48년 올림픽 첫참가후 세계10위권 껑충/서울올림픽 160국참여 최대 광복이후 사회 각분야는 세계를 향해 눈부신 성장을 거듭해왔다.이 가운데서도 지난 50년간의 한국스포츠는 올림픽의 표어처럼 「빠르게 높게 힘차게」(Citius Altius Fortius) 한국의 세계화를 이끈 첨병이었다. 스포츠는 한민족의 단결과 끈질긴 기개를 유도했고 우수한 기량을 발휘케 했다. 48년 1월 생모리츠 동계올림픽(스위스)과 7월의 런던 하계올림픽때 한국선수단은 사상 최초로 태극기를 앞세우고 참가했다. 8월15일 대한민국정부수립을 선포하기 이전에 스포츠는 이미 한국의 독립을 세계에 전파한 것이다. 당시만해도 존재의 부각과 참가에 의의를 뒀던 한국스포츠는 50년의 세월을 지내오면서 이제 세계10위내에 드는 강호로 발돋움했다. 특히 서윤복에서 황영조에 이르는 동안 마라톤은 한국스포츠를 세계에 알린 여명기의 선두주자였고 절정기를 만든 최종주자였다.
47년 4월17일 서윤복은 제51회 보스턴 마라톤대회에서 우승, 해방후 세계무대에서 최초로 우승한 한국인이 됐다. 또한 3년뒤에는 함기용 송길윤 최윤칠이 참가하여 금 은 동을 휩쓸며 마라톤 한국의 위세를 떨쳤다.
그러나 마라톤이외에 초창기의 한국스포츠가 내세울 것은 없었다. 한국은 48년 런던올림픽에서 역도의 김성집이 동메달을 따낸이후 올림픽의 금맥을 캐기까지 무려 28년이란 각고의 세월을 겪어야 했다.
올림픽은 아니지만 66년 6월12일에는 세계레슬링선수권대회에서 장창선이 우승, 첫 세계선수권 금메달을 획득했고 13일후인 6월25일에는 프로복싱의 김기수가 니노 벤베누티(이탈리아)를 누르고 세계주니어미들급 챔피언에 올라 온국민을 흥분시켰다.
73년에는 이에리사 정현숙이 유고 사라예보 세계탁구선수권대회에서 우승, 구기사상 첫번째 세계제패를 이룩했다.
한국스포츠의 오랜숙원이었던 올림픽의 첫금은 76년 캐나다 몬트리올에서 나왔다. 자유형 페더급에 출전한 양정모는 올림픽무대에서 처음 애국가를 울려퍼지게 하면서 체육강국으로의 도약대를 만들어 놓은 것이다.
동서냉전의 여파로 80년 모스크바올림픽에 불참했던 한국스포츠는 84년 LA 올림픽을 계기로 폭발적으로 성장했다.
구소련을 위시한 공산권의 보이코트에도 불구, 사상 최대인 141개국이 참가한 LA대회에서 한국은 안병근 하형주(이상유도) 김원기 유인탁(이상레슬링) 신준섭(복싱) 서향순(양궁)등이 6개의 금메달을 휩쓸었고 은6 동7개를 추가, 종합 메달순위 10위의 쾌거를 이룩했다.
한국스포츠의 도약은 88년을 맞아 절정기에 달한다.
1896년 그리스 아테네에서 시작된 올림픽은 지구촌 최대의 축제로 성장했고 대회개최에는 엄청난 예산과 함께 통신 수송 숙박 경기장시설등 사회간접자본의 완벽한 준비가 요구된다. 그렇기에 84년 LA대회까지 23회를 치러오면서 전세계에서 16개국만이 올림픽을 개최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한국은 개발도상국으로서 올림픽을 개최했다. 그것도 구소련을 비롯한 동구블록등 전세계 160개국이 출전, 사상 최대를 기록했고 완벽한 운영으로 역사상 가장 훌륭한 올림픽이었다는 평가도 받았다.
성적도 사상 최고였다. 메달박스인 양궁에서 3개, 유도 레슬링 탁구 복싱에서 2개씩의 금메달이 쏟아졌고 여자핸드볼도 금을 추가, 한국은 무려 12개의 골드로 소련(55개) 동독(37개) 미국(36개)에 이어 종합4위에 오르는 스포츠의 기적을 연출했다.
일부에서는 홈 텃세에 기인했다는 비판도 일었다. 물론 홈어드밴티지가 있었지만 한국스포츠의 향상된 기량이 원동력이었다는 사실은 4년뒤 바르셀로나에서 입증됐다. 여갑순(사격) 황영조(마라톤)가 대회 첫번째와 마지막 금메달을 획득한 한국은 4년전 서울에서와 같은 12개의 금메달에 은5 동12개를 더해 종합7위, 스포츠강국의 위치를 당당히 다질수 있었다.
뿐만 아니다. 48년1월 생모리츠에 3명의 초미니 선수단을 파견했던 동계종목에서도 괄목할 만한 성장을 보였다. 쇼트트랙이 동계올림픽종목에 추가되면서 92년 알베르빌(프랑스)에서는 동계올림픽 사상 처음으로 2개의 금과 은1 동1개를 획득, 종합10위에 올랐다. 지난해 릴레함메르(노르웨이)에서는 금4 은1 동1개로 종합6위로 도약, 동·하계 올림픽의 균형을 이루게 됐다.
◎국제스포츠계 빛낸 한국인/김운룡·정몽준씨 등 150여명/세계기구서 맹활약 위상높여
한국스포츠의 위상이 높아짐에 따라 한국인의 국제스포츠계 진출도 활발해 지고 있다.
현재 각종 세계 스포츠기구에 진출한 한국인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의 김운룡 부위원장을 비롯하여 국제축구연맹(FIFA)의 정몽준 부회장등 150여명에 달하고 있다. 이기붕 이상백 장기영 김택수 박종규씨에 이어 86년 한국의 6번째 IOC위원이 된 김운룡씨는 92년 부위원장으로 피선되면서 영향력을 더하고 있다. IOC내에서도 올림픽 중계권료를 관장하는 가장 중요한 TV분과를 담당, 후안 안토니오 사마란치 위원장에 이어 제2인자로 평가받고 있다. 그의 주도로 한국의 국기인 태권도가 2000년 시드니올림픽에 정식종목으로 채택됐다. 97년에 임기가 만료되는 사마란치위원장에 이어 차기 대권주자로까지 주목 받고있다.
이와함께 오는 6월 IOC 부다페스트총회에서는 또한명의 IOC위원을 배정받을 것으로 보여 한국스포츠계의 높아진 비중을 느낄수 있다. 현재로서는 이건희 아마레슬링연맹회장이 유력시 된다.
지난해 국제축구연맹(FIFA) 부회장에 피선된 정몽준축구협회장도 한국축구의 발언권을 높이고 있다. 정회장은 올림픽에 버금가는 월드컵대회의 2002년 한국유치를 위해 전세계를 누비고 있다.<전상돈 기자>전상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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