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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러시아의 정신/윌리엄 파프 미 칼럼리스트(해외칼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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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들리는 러시아의 정신/윌리엄 파프 미 칼럼리스트(해외칼럼)

입력
1995.04.1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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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황폐화한 전통 되살려야 미래의 주역된다 일본 도쿄(동경)지하철에서 발생한 독가스 테러사건의 용의집단으로 지목받고 있는 옴진리교가 모스크바에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다는 것은 불안한 일이다. 유럽의 언론들은 옴진리교가 모스크바에서 상당한 힘을 얻은 이유는 부분적으로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측근진영이 후원하고 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만일 이것이 사실이라면 돈과 관련된 진부한 해석을 쉽게 떠올릴 수있다. 오늘날 러시아에는 돈벌이가 된다면 대상을 가리지 않는 비밀거래가 판을 치고 있어 종말론적 교리와 야망에다 많은 돈을 가지고 있는 옴진리교가 고위층과 줄을 대기는 쉬웠을 것이다.

 진부하기는 마찬가지지만 옴진리교가 러시아에서 성공을 거둔 이유를 심리학적으로 설명하기도 한다. 일본에서는 2차대전으로 전통적 신비주의 사회가 파괴된 이후 방황하는 시민들에게 일체감과 도덕적 위안을 제공하는 신흥종교가 번성해 왔다. 러시아에서도 89년 구소련의 몰락이후 기존 사회와 이념의 파괴는 그 강도면에서 패전이후의 일본보다 훨씬 급진적이었다. 따라서 예언가, 점쟁이에다 심지어 사기꾼까지 우후죽순격으로 생겨났다.

 러시아의 방향감각 상실에 대해서는 이러한 해석외에도 정치·문화적 영역이 있다. 즉 러시아가 유럽문명에 속하는가 아닌가 하는 정체성 문제가 다시 고개를 들고 있는 것이다.

 러시아는 유럽의 동쪽 끝인가. 아니면 동로마제국을 계승하고 그리스정교의 수호자로서 면면한 역사를 가진 독특한 실체로서 유럽과는 별개의 존재인가.

 이것은 단순한 이론적 논의가 아니다. 러시아인들이 이 문제를 어떻게 보는가는 러시아의 미래를 좌우하는 중대한 것이다. 즉 러시아가 서방과의 협력속에서 미래를 건설할 것인가, 아니면 또 다시 서방과의 적대적 경쟁과 잠재적 라이벌 관계에 들어갈 것인가 하는 문제이다.

 또한 이러한 논의가 실제로 이루어지고 있는 것도 어렵지 않게 알 수 있다. 러시아의 젊은 지식인이나 정치인들과 이야기해보면 서방에서 그들이 어떻게 비춰지고 있으며 서구인들에게 어떻게 대접받고 있는가에 대해 알게 된다.

 이 문제는 중요하다. 왜냐하면 러시아 문명이 서구문명과 별개라면 러시아가 겪었던 불행했던 과거와 현재의 비정상적 상황이 보다 쉽게 합리화될 수 있기 때문이다. 다른 나라들이 좋아하지는 않지만 서구인이 우둔하고 천박한 물질주의자인 반면 러시아인은 정신적이고 현명하다는 견해도 있다. 이른바 슬라브주의다.

 이 논의가 위험한 곳으로 흐르면 다음과 같은 극단적인 주장이 될 수 있다. 「당신네 서구인은 우리를 서구인이 아니라고 생각하며 당신들의 파트너로는 어울리지 않는 후진적이고 아시아적 국가라고 여기고 있다. 그렇다면 좋다. 이제 우리는 어떻게 행동해야 할지 알았다. 미안하지만 글라스노스트(개방) 이전 70년동안의 적대관계 만큼이나 피곤한 시절로 돌아가 보자」는 식이다. 제정 러시아의 기초를 닦은 표트르대제, 19세기 초 러시아를 민주화시키려고 노력했던 12월당, 레닌은 모두 서구주의자였다. 레닌은 러시아를 독일과 같은 강력한 산업국가로 만들려고 했다. 미하일 고르바초프전대통령도 서구주의자였다.

 반면 스탈린과 스탈린주의는 러시아의 동방확장을 시작한 이반 뇌제의 전제주의적 전통에 그 뿌리를 가지고 있는 슬라브주의자였다. 우리는 아직 현 보리스 옐친대통령의 입장이 무엇인지 잘 모른다.

 그러나 이 문제를 둘러싸고 우리는 일종의 협박을 당하고 있다. 미국과 서유럽 국가들은 러시아에 민주주의가 유지되기를 바란다면 러시아에 양보를 해야 한다는 경고를 받고 있다는 것이다. 북대서양조약기구(나토)도 동유럽으로의 확장계획이 급속히 이루어질 경우 러시아는 또 다시 옛날의 「나쁜 나라」로 돌아갈 것이란 이야기를 듣고 있다.

 진실을 말하자면 러시아가 서방에 속할 것인가 동방에 속할 것인가에 대한 똑 떨어지는 선택은 없다. 러시아는 과거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렇듯이 동서양의 양면을 모두 가지고 있으며 앞으로도 양면의 전통을 가지고 씨름을 해야할 것이다. 이 씨름에서 어떤 결과가 나올지는 미국과 서유럽의 태도와는 직접적 관계가 없다. 러시아의 진로는 러시아 사회 자체의 동력과 이해관계에 달려있다.

 그러나 러시아 사회는 아직 러시아를 서방에 접목시킬 수있는 견고한 제도와 전통이 없는 유동적인 상태다. 무엇보다도 러시아의 문화적 전통과 황폐화한 도덕을 되살리는데 관심을 쏟아야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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