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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무솔리니장녀 치아노 일생/이서 처음 바지입은 여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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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망 무솔리니장녀 치아노 일생/이서 처음 바지입은 여자

입력
1995.04.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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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찬 행동 파시스트신여성 표본/남편 처형당하자 아버지와 의절 「이탈리아에서 바지를 입은 첫 여성이자 첫 여성 운전자」「남편의 처형에 항의, 아버지의 성을 버린 딸」.

 8일 85세로 사망한 파시스트 독재자 무솔리니의 장녀인 에다 무솔리니 치아노는 남자를 뺨칠 정도의 당찬 행동과 함께 남편에 대한 비련의 순애보로 유명하다.

 1910년 5남매의 맏이로 태어난 에다는 진취적 성격과 고집, 독립심등 신여성의 표본으로 무솔리니의 사랑을 독차지했다. 그러나 그의 삶은 남편 치아노가 아버지 무솔리니에 의해 처형되면서부터 돌변하고 말았다.

 외무장관 출신의 남편 갈레아조 치아노 백작은 연합군의 시칠리아 상륙이 임박한 1943년 휴전협정을 이끌어내기 위해 이탈리아 파시스트 평의회에서 무솔리니의 체포에 가담했다. 평의회 결정으로 무솔리니는 연금되고 파시스트정권은 몰락했으나 히틀러가 무솔리니를 구출, 이탈리아 북부에 괴뢰정권 살로사회주의공화국의 수반으로 앉히자 오히려 치아노가 반역주범으로 몰렸다.

 에다는 남편이 사형선고를 받자 아버지 무솔리니와 히틀러에게 사면을 호소했으나 거절당했고 남편은 끝내 처형됐다. 이에 에다는 『두체(이탈리아 지도자)의 딸이 아니라 파시즘 희생자의 아내를 택하겠다』며 아버지에게 『당신은 더이상 아버지가 아니다. 무솔리니란 성을 다시는 쓰지 않겠다』고 의절편지를 보냈다.

 그후 에다는 로마에서 은둔생활을 하며 75년 2차대전을 회고한 「나의 증언」이라는 책을 펴내기도 했는데 수년전 무솔리니 관련집회에 참석할 때까지 무솔리니집안과 화해하지 않았다.<배연해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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