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1년간 손바닥크기 3만여점 “다작”/샌프란시스코 공항 대형벽화 맡아 재미화가 강익중(35·사진)씨는 미국생활 11년간 모두 3만여점의 그림을 그렸다.
1년 3백65일 하루 평균 7∼8점을 그려야 채울 수 있는 숫자다. 다작은 「화가 강익중」과「인간 강익중」을 함께 설명하는 열쇠어이다.
화가 강익중은 미국에서 벌써 꽤 이름을 얻었다. 그가 현재 심혈을 기울이고 있는 작업은 샌프란시스코 국제공항의 초대형 벽화 제작이다. 99년 문을 여는 국제선 청사 회랑 3개층을 관통하는 높이 10.6 둘레 3.6의 원주 4개가 가로 6인치, 세로6인치의 세라믹 벽화 1만7천9백개로 채워진다. 이 1백만달러짜리 작업을 그는 미국에서도 한다하는 경쟁자 2백여명을 물리치고 따냈다.
그가 그리는 벽화는 커다란 밑그림 몇개를 놓고 조각을 맞추는 식이 아니다. 하나 하나가 모두 별개의 그림이다. 「화가 강익중」은 그래서 이 모든 그림을 다 들여다보아야 만날 수 있다.
손바닥 크기의 캔버스에 그림을 그리게 된 데에는 나름의 사연이 있다. 그는 84년초 홍익대 미대를 졸업하고 뉴욕 프랫 인스티튜트로 유학왔다. 집에서 돈 타쓸 형편이 못되는 그에게 프랫 3년은 주독야경의 연속이었다. 밤 9시부터 이튿날 아침 9시까지 꼬박 12시간동안 식료품점에서 야채를 다듬으며 점원노릇을 하고, 아침 10시면 등교했다. 잠은 학교가 끝난뒤 3∼4시간씩 잤다. 주말이면 벼룩시장에 나가 아르바이트를 했다.
이렇게해도 학비까지 댈 순 없었다. 방학때면 목돈 마련을 위해 시계행상을 했다. 당연히 그림 그릴 시간이 없었다. 그래서 고안해낸 게 손바닥에 들어가는 캔버스였다. 버스나 지하철에서 자투리 시간을 이용해 기갈들린듯 그림을 그렸다. 그의 말대로 「속에서 우러나오는 정열을 주체하지 못하던」시절이었다. 1년이 지나자 꼭 1천2백개의 그림이 모였고, 첫 개인전도 가졌다.
그가 세상에 알려진 것은 90년말 뉴저지의 몽클레어 주립대에서 7번째 개인전을 했을 때였다. 이름있는 미술관이 아니어서 별다른 주목을 받지 못했는데 권위와 공정성에서 미국 최고로 꼽히는 예술전문지 「빌리지 보이스」가 한면을 할애해 그의 작품을 다뤘다. 그림 그려 밥먹게 된 건 그로부터 얼마 지나지 않아서였다. 그리고 지난해 여름에는 드디어 비디오 아트계의 거장 백남준씨와 2인전을 하게 됐다. 그것도 미국 4대 미술관중의 하나인 휘트니뮤지엄이 기획한 전시회였다. 백씨는 전시회를 얼마 앞두고 휘트니측에 팩스를 보내 『나는 신경쓰지 말고 강익중에게 더 좋은 자리를 주라』고 부탁할 정도로 그를 아껴주었다.
그는 늘 감사하는 마음으로 산다. 맨해튼 차이나타운 작업실 벽에는 그의 얼굴만큼이나 단정한 필체의「바른 마음 많은 노력」이란 글귀가 붙어 있다. 그의 그림이 인간에 대한 연민 사랑 동정에 발내리고 있음은 화가 강익중과 인간 강익중이 따로 있지 않음을 보여준다.<뉴욕=홍희곤 특파원>뉴욕=홍희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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