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 우리에게 먹고 사는 문제는 옛날 이야기가 되었다. 아직도 끼니를 거르는 사람들의 이야기가 화제가 될 때도 있지만 사람들에게는 그저 남의 이야기처럼 들린다. 꽁보리밥에 수제비만 먹고 살던 시절도 있었다. 다른 반찬이 있었던 것도 아니다. 꽁보리밥을 고추장에 비벼 먹거나 찬물에 말아 간장을 찍어 먹는 것이 전부일 때도 많았다. 또 외국원조 덕분에 얻은 밀가루로 하루가 멀다 하고 수제비를 해 먹어 한동안은 밀가루음식을 생각만 해도 치가 떨린 적도 있었다. 우리 어머니의 음식솜씨 탓을 할 여유라고는 조금도 없었다.
그런데 이제는 잘 한다는 꽁보리밥집이나 수제비집을 우정(일부러) 찾아 맛을 즐기는 세상이 됐다. 이게 나만의 이야기가 아닌지 곳곳에 그런 집들이 들어서고 연일 많은 사람들로 북적댄다. 그런 집들의 생긴 모습에 정감을 느낀다. 초라한 오두막집도 있고 새마을운동으로 모두 헐려 나간 토담집, 초가도 있다. 그런 곳에서 음식을 먹고 차를 마신다. 그리고 사람들은 옛 정서라도 느끼는 듯 흐뭇해 한다. 시간에 좀더 여유있는 사람들은 한참을 그렇게 앉아 있다. 그런 사람들을 보고 있노라면 내 마음도 흐뭇하고 여유가 있어 좋다. 모든 것이 바쁘게 돌아가고 각박하기만 한 세상에 이런 사람들을 위한 공간도 있구나 하는 생각이 든다. 그곳에는 가장된 친절을 보이는 주인도, 종업원도 없어 좋다.
또 위세를 보이려고 반말을 하며 종업원을 닦아세우는 「위엄있는」 아저씨, 아줌마가 없어 좋다. 시끄럽게 떠드는 여인들이 없는 것도 그곳을 찾기에 충분한 이유다. 음식값이 비싸지 않으니 비싼 음식 먹고 거들먹거리며 지갑을 헤집어 보이는 「부자」를 만나지 않아서도 좋다. 「가난한」 곳에 있으면 마음도 가난해지는 걸까? 사람들도 착해 보인다. 부를 좇는 마음은 인간의 품위를 추락시키는가 보다. 이제 우리 마음의 행방을 살피며, 주님께서 『부유한 사람들아, 너희는 불행하다』(누가 6.24), 『마음이 가난한 사람은 행복하다』(마태 5.3)고 말씀하신 뜻을 헤아리게 된다.<김종수 신부·주교회의 사무차장>김종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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