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변모하는 농촌 생생한 문학적 보고서 세계화의 바람 탓인지 요사이는 외국체험을 소재로 한 소설이 부쩍 늘었다. 사실 민족의 역량이 안에서 성숙한 때는 반드시 나라 밖의 사정에 대한 통찰도 함께 깊어졌으니, 국학의 발흥과 외국학의 발전은 서로 배타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거의 병진하는 터이다. 나라의 경계를 좀체 넘어볼 생의도 못하고 옴닥옴닥하는 것도 답답한 노릇이지만 국내문제도 제대로 해결하지 못한 채 세계화를 외치는 것 또한 부황한 일이다. 그때 세계화는 그저 구두선에 그치고 말 것인데, 근대문학의 기초도 부실한 우리 문단에도 그런 시류가 흐르는 것이 아닌가, 염려가 없지 않다.
한창훈의 「목련꽃 그늘 아래서」(실천문학 봄호)는 이제는 멸종위기에 몰린 「농촌을 다룬 문학」이다. 자본의 물결이 도도한 이 시대에 시류에 영합하지 않고 아직도 농촌소설을 만지는 작가가 있다는 반가움이 앞서지 않는 것은 아니지만, 작품을 끌어가는 구성력, 인물을 매만지는 품새 그리고 인정물태의 기미를 섬세하게 살필 줄 아는 수굿한 문체등, 이 신인급 작가의 기초가 탄탄한 것이 더욱 미더웠다. 솔직히 말해서 요즘은 이만큼 빠진 단편도 드물다.
이 작품을 끌고 나가는 축은 음암댁과 지은네, 두 농촌여성이다. 음암댁은 여고시절 교내 합창반에서 활동한 경력도 있지만 「시집 와서 아들 둘 낳고 시어머니 남편 봉양하고 지천으로 널린 일하며 청춘을 보내 버린」 전형적인 농촌여성이다. 이에 반해 지은네는 「고향은 남쪽 어디지마는 이곳에서 정착한 지 거진 십년이어서… 시장에서 리어카 커피장사를 한 적이 있을 정도로 배짱이 있는」, 말하자면 억척어멈이다. 지은네는 농촌출신이지만 언제든지 농업노동에서 이탈할 준비가 되어 있는 셈인데, 그녀의 남편 역시 도시의 공사판을 떠돈다.
전자가 자작농으로 농촌에 터잡고 있는데 반해 후자가 끝내 떠돌이신세를 면치 못하는 이유는 아마도 지은네가 소작농 출신의 이농민이라는 사실에 말미암을 터이다. 그런데 농업의 위기는 음암댁에게 닥쳐왔다. 타고난 농사꾼인 남편을 그녀가 윽박여 동사무소 직원으로 밀어넣었기 때문이다. 이제 위기는 단순히 농업의 외부에 있지 않다. 자본의 공세에 휘말려 농민들 스스로 농업을 포기하는 곳, 위기의 내재화가 진짜 문제로 된 시대인 것이다.
이 작품은 오늘날 변모하는 농촌의 모습을 두 여성을 통해 그린 뛰어난 문학적 보고서이다. 그러나 농촌과 도시가 함께 위기를 넘어서 새로운 삶의 길을 찾는 실마리조차 보이지 않는다는 점에서 아직은 세태소설에 머무르고 있다.<최원식 문학평론가·인하대교수>최원식 문학평론가·인하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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