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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3년만의 새시집 「바퀴소리를 듣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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장옥관 3년만의 새시집 「바퀴소리를 듣는다」

입력
1995.03.30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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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쓰러질듯 버티고 서있는 피폐한 삶의 풍경들…/미술·음악개념 차용 일그러진생 묘사 <낙동을 가려면 선산에서 910호 지방도를 타야 한다…낙동 가면 무엇이 있나 고드름 달린 왜식목조 이층 목화다방과 덜컹대는 유리미닫이 약방의 낡은 처방전 밤 아홉시에 벌써 버스는 끊기고 싸락눈이 갈기 세워 골목을 누빈다…다닥다닥 이마 낮춘 처마모퉁이 점두 중늙은이 서넛 둘러 앉아 소주를 마시고 어둠이 웅크리고 있는 벌판 저 너머 소리없는 눈발이 외딴 집의 불빛을 달래고 있다…낙동은 이미 너무 흔한 곳 낙동을 가려면 누구나 끊긴 눈밭을 지나 백양나무 환한 둥치를 거쳐야 한다>  (「낙동 가는 길」에서).

 현실과 비현실을 가로 지른 공간에서 부동하는 정신을 찾아 길을 떠났던 시인 장옥관(42)씨가 「황금연못」이후 3년만에 새 시집을 내놓았다. 「바퀴소리를 듣는다」(민음사간).

 이번 시집에서는 여행의 도정에서 본 것, 결국 도달해서 목격한 것이 쓰러질 듯 버티고 서 있는 피폐한 삶의 풍정이며 그 속에서 상처받은 여러 인생이라고 말하고 있다. 출렁이던 황금연못에 남아 있던 「알 수 없는 슬픔의 자취」는 도시화의 세례를 받고 부서지고 그 틈새로 악취마저 풍기는 마을, 진급누락과 전출명령·해고로 깨져가는 소외받은 인생이다.

 하지만 그의 시는 저항이나, 독설 담긴 풍자나 해체의 이야기가 아니라 무심한 카메라가 잡은 슬로 모션처럼 황량한 세상을 꼼꼼하게 적어내고 있다. 그 기록은 「가을 속리산」을 오르면서 산의 빈 풍경들과 하나가 됐던 것같은 몰입과 진지함으로 인해 저버릴 수 없는 진실성을 가지고 있다.

 「십수 년을 잡은 운전대」였지만 「피할 줄 밖에 모르는 그의 운전은 늘 서툴기만 했」고 남은 몫은 「잦은 해고와 빈 쌀통」이었다. 그래서 그는 밖으로 무쇠 자물통을 잠그고 「몸 구부려 스스로의 깊이로 내려」갔다. 곡 각 율 박등 미술과 음악의 개념을 차용한 시들이 읊는 것은 두루뭉수리하게 인생을 살아내지 못하는 일그러진 사람들의 모습과 삶이다.

 경북 선산에서 태어난 그가 대구에서 대학을 공부하고 처음 얻은 직업은 왜관에 있는 여중 교사였다. 1년을 가르쳐보고 열정없이는 이 일을 지탱하기 어렵다고 느껴 구미로 들어갔다. 육체노동자로 일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공단생활 18년동안 주위 사람들의 모나고 뒤틀린 삶을 자기 일처럼 보고 겪었다. 그래서 모질고 강파르거나 모자라고 무른 인생을 타박하지 않는다. 그는 그 인물들이 펼쳐내는 삶과 앎이 「오묘하고 깊으며 때로는 아득한」 것이라고 느끼고 있다. 「모나고 각진 곳을 두드려/둥글게 펴나가는 북소리」와 이파리들이 흔들림으로 조용히 일러주는 「저마다 각지고 둥글어야 할 까닭」을 알고 있기 때문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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