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 클린턴 대통령은 존 도이치를 신임 미중앙정보국(CIA) 국장에 임명하면서 CIA국장이 각료인가 아닌가라는 오랜 논쟁을 다시 불러일으켰다. 하지만 정작 중요한 문제는 오늘날의 CIA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이다. CIA 국장이 전통적으로 정책결정 과정에 참여하지 않은 것은 정보가 정책방향에 따라 조정되는 것보다는 정책을 정보에 맞추는 것이 훨씬 현명하다는 판단 때문이다. CIA 국장은 정보를 정책에 맞도록 가공할 수있다.
학자이면서도 정치감각이 뛰어난 도이치 신임 국장은 너무 똑똑하고 야심만만해 자신이 부수적 역할에 국한되는 것을 원하지 않을 것이다.
우리는 CIA 국장을 각료에 포함시킴으로써 CIA가 더욱 강력해질 수 있다는데 인식을 같이 한다. 하지만 탈냉전 시대의 CIA가 무엇을 할 수 있고 또 해야 하는가 라는 문제에 대한 입장을 정리하고난 뒤에라야 CIA는 강력해질 것이다.
최근 프랑스에서 발생한 미불 양국간 스파이 분규는 위의 문제가 전혀 해결돼 있지 못했음을 여실히 반영했다. 우리의 세금으로 이뤄진 CIA의 활동은 단지 미국기업의 고객만을 감옥안에 넣은 꼴이 됐다.
외국에서의 부정행위에 관한 국내법은 미국 사업가가 국제거래에서 정보나 경쟁상의 이점을 얻기 위해 외국 관리들에게 뇌물을 주는 것을 범죄로 엄격히 규정하고 있다. 그런데 CIA가 해왔던 일이 바로 이것이다. 프랑스나 외국의 정보기관들도 같은 일을 하고 있는 게 사실이고 특히 국제 무기거래에서 뇌물수수 행위는 보편적이다. 뇌물수수 행위를 불법화시킨 의회는 CIA 요원에게는 예외를 인정하고 있는 것같다.
어쨌든 이번의 미불 양국간 산업 스파이 분쟁은 CIA의 활동과 미국법의 상충이라는 문제 및 그에 대한 적절한 해결책 마련의 필요성을 제기하고 있다.
결국 이번 분쟁은 탈냉전 시대의 CIA가 무엇을 할 수 있고 해야만 하는가라는 질문에 관한 미국 정부의 답변이 아직 준비돼 있지 않다는 유감스런 사실을 드러냈다.
얼마전 백악관이 발표한 정보 우선순위 리스트에 의하면 CIA의 정보활동에서 무역 및 경제관련 정보가 겨우 중간정도의 순위에 오른 것으로 돼있다. 물론 무역 및 경제 정보가 이전에는 CIA의 중요 항목에 오르지도 못했기 때문에 무역및 경제 정보가 중간급의 중요도를 얻은 것도 다행이라면 다행이다.
그러나 한 의회 소식통이 밝혔듯이 CIA의 정보업무를 이러한 우선순위에 맞추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더군다나 경제가 그 무엇보다도 중요해지고 있는 시기이고 통상정보에 관한 공작이 CIA의 미래상를 제시해주고 있다는 점에서 백악관측의 정보 우선순위 설정은 적잖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CIA는 최근 프랑스와 중남미국가간의 무기거래를 막고 세계무역기구(WTO) 사무총장 경선에서 레나토 루지에로 전 이탈리아무역장관을 몰아내는 일과 관련된 정보업무를 한 것으로 알려졌다.
의심할 나위 없이 도이치 신임국장은 이러한 게임을 즐길 것이다. 도이치 신임 국장은 유럽의 무기및 우주 분야의 재편과정에서 미국이 발언권을 행사할 것이라는 말을 함으로써 유럽에서는 이미 불길한 명성을 얻었다.
이러한 상황은 오늘날의 CIA의 역활에 관한 근본적인 의문을 제기한다.
미국은 지금 무역상의 이익을 챙기고 경쟁국의 수출을 둔화시키기 위해 국제 및 국내법에 저촉 받지않는 CIA의 활동을 바라고 있는가. 미국은 새로운 세계무역 질서를 제창하며 모든 등급에서의 규정준수를 다른 국가들에 강조했다. 의회는 새로운 CIA가 무슨 일에 전념해야 하는지, 클린턴 대통령과 도이치 국장이 CIA의 미래를 어떻게 만들어나가야 할지에 관해 보다 많은 영향력을 행사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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