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국 긍정태도… 협상전략 여유/“명칭변경은 「최악상황」 차선책” 미국측은 북한측에 제공될 경수로문제를 다루는 베를린전문가회의에서 한국형을 고수할 것이라는 자세를 분명히했다. 지난 22일부터 이틀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협의에서 미국은 이재춘 외무부차관보에게 한국형외에는 대안이 없다는 기존 입장을 재확인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차관보는 특히 미국의 일부언론에 보도된 명칭의 변경문제에 대해서는 전혀 논의되지 않았다고 말해 일부 보도는 미행정부의 정책과는 별개의 문제라는 시각을 보였다.
실제로 미국측이 한국측과의 마찰을 피하기 위해 명칭변경문제를 일부러 의제에 올리지 않았을 것이라는 해석도 있지만 이는 지나친 비약인듯 하다. 미국이 아직 북한과의 경수로 문제 타협을 그렇게 서둘 이유가 없기 때문이다.
미국은 이번 베를린전문가회의에서도 그같은 태도를 견지할 방침이다. 워싱턴의 많은 전문가들은 『베를린회의가 세번째 대좌이지만 미국은 끝까지 한국형 경수로의 수락을 주장하고 북한은 절대불가 입장을 반복할 것이 분명해 협상이 결렬까지는 가지 않더라도 상당한 진통을 겪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이들은 미국이 「벼랑끝 타협」이라는 북한의 협상전략을 간파하고 있는데다 주변 여건도 미국쪽으로 유리하게 전개되고 있어 과거 협상때와 같이 쉽게 타협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확신했다.
미국은 북한이 핵동결조치를 해제하지 않는 한 경수로 문제를 해결할 시간은 아직 충분하다는 입장이다. 북·미기본합의서가 6개월내 경수로공급계약 체결을 명시하고 있지만 이는 목표시한일 뿐 그 이상의 의미는 없다고 미국은 해석하고 있다. 다시 말해 협상이 결렬되지 않고 계속된다면 문제될 게 없다는 것이다.
미국은 또 이번 협상을 앞두고 북한의 최대지원국인 중국의 입장을 타진한 결과 긍정적인 답변을 들은 것으로 알려졌다. 중국은 북·미합의를 가장 적절한 북핵문제 해결방안으로 여기고 있으며 어느 측도 합의를 깨뜨려서는 안된다는 점을 분명히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같은 태도는 협상이 결렬될 경우 미국이 시도할 대북한 제재에 중국을 끌어들일 수 있다는 기대를 갖게 한다. 최악의 경우에 대비하더라도 미국에는 이전과는 다른 여유가 생긴 셈이다.
그렇다고 미국측이 협상과정에서 전혀 융통성을 발휘하지 않을 것으로는 볼 수 없다. 한국입장의 최대한 반영과 협상성과의 극대화라는 상충되는 목표를 적절히 조화시켜야 하는 부담을 안고 있는 미국은 최근 협상의 돌파구 마련을 위해선 차선책도 염두에 둬야 한다는 시각을 표출해 왔다. 미국측이 시사하는 「차선책」은 크게 두가지다. 실질적으로는 북한측에 한국형 경수로를 제공하지만 이의 명칭을 바꿔 북한의 체면을 살려주든가, 아니면 미국회사의 하청업체 형식으로 한국형 경수로를 제공하는 방법을 신중히 고려해야 한다는 것이다.
물론 미정부는 이같은 방안을 한국에 공식적으로 요구할 수 있는 입장은 아니다. 로버트 갈루치핵대사가 기자회견에서 『한국정부가 한국표준형이라는 이름에 너무 집착하는 것 같다』고 밝히고 사석에서『경수로 명칭에는 구애받지 않겠다』는 발언을 하는 정도다. 로스앤젤레스 타임스지가 『한국측이 「한국형」이라는 라벨을 제거하면 북한측의 주장을 잠재울 수 있다』는 견해를 피력하는 바람에 문제가 복잡해졌을 뿐이다.
미국은 아직은 분명히 한국형 경수로 제공을 관철시키려하고 있다. 그러나 협상이 벼랑끝으로 몰리면 미국은 차선책 카드도 꺼낼지 모른다.<워싱턴=정진석 특파원>워싱턴=정진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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