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제는 경험과 지식도 많이 축적됐다. 그러나 미국과의 시장개방협상에서 여전히 매우 서투르다. 세계무역기구(WTO)의 출범에 따라 앞으로는 농수산물에서 서비스에 이르기까지 시장개방이 광범하고 가속적으로 추진되게 예정돼 있다. 소위 국경없는 경제의 실현은 돌이킬 수 없는 세계적 추세다. 그렇다 해도 우리는 개방의 속도·폭·시기등에서 가능한 한 우리경제에 유리한 결과를 얻기 위해 협상력을 발휘할 필요가 있는 것이다. 문제는 우리의 협상능력이 과연 이러한 시대의 소명을 맡아갈 수 있느냐 하는 것이다. 유감스럽게도 「노」다. 우리의 시장개방협상은 쌍무협상의 경우 사실상 미국과의 협상이 주축을 이루고 있는데 이 협상에서 우리의 뜻이 관철된 적이 거의 없다. 우리는 일본 아시안국가등에 비해서 협상력이 상대적으로 약한 것같다.
미국이 전가의 보도처럼 내 휘두르는 미통상법 슈퍼 301조에 대해서 우리는 너무나 겁을 먹고 있다. 미국은 이 공포증을 이용하고 있는 것같다. 최근의 좋은 예가 미 AT&T사의 신기종 교환기에 대한 파격적인 시장개방이다.
한국통신의 조달규정에 의하면 교환기신기종의 경우 국내통신망환경에 적합한지를 엄격히 가리기 위해 제조업체평가에서부터 시작해서 기능시험, 현장시험, 제원시험등 다단계시험을 거치도록 하고있다. 여기에는 보통 1∼2년이 소요된다. 그런데 정부는 지난 22·23양일간 워싱턴에서 열린 한미통신협상에서 AT&T의 신형교환기(5ESS―2000)에 대해서 다단계인증절차를 무시하고 기능시험만으로 품질인증을 주기로 했다. 이에 따라 AT&T가 국선교환기입찰에 참여할 수 있게 된 것이다
AT&T는 지난해 10월에 시험신청을 했으므로 한국통신의 규정대로 하면 올해말이나 내년말에 가서야 품질인증절차가 끝나게 돼있어 한통의 6월입찰에는 참여가 불가능한 것이었다. 결국 AT&T사는 미국정부를 앞세워 뜻을 이룬 것이다.
AT&T사가 겨냥하고 있는 것은 이동통신업체인 신세기이동통신과 한국이동통신이 앞으로 구매하게 될 약3조원 규모의 디지털방식의 이동통신시스템(CDMA)시장이다. AT&T사는 그들의 CDMA시스템의 근간이 되는 「5ESS―2000」을 미리 맛보임으로써 경쟁의 우위를 선점하려는 것이 목적이다.
두려운 것은 AT&T사의 국내시장잠식가능성이다. 삼성전자, LG정보통신, 대우통신, 한화전자정보통신등 국내메이커 4개사는 AT&T의 「특별대우」에 대해 한국통신을 상대로 불공정행위로 제소하겠다고 항변하고 있다.
시장폐쇄를 견지하는 것도 불합리하지만 외국정부의 압력이 있다고 해서 외국메이커에 대해 특혜적 개방을 허용하는것도 부당하다. 정부는 합리적이고 일관된 균형적 협상원칙을 세워야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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