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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언론파괴/일부 신문의 사도를 우려한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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재벌의 언론파괴/일부 신문의 사도를 우려한다(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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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95.03.25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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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일부 재벌신문이 근자에 보여주고 있는 무절제하고 몰상식한 행태에 대해 우리 언론계의 장래를 위해 심각한 우려를 표시하지 않을 수 없다. 재벌이 과연 공룡과 같은 힘을 빌려 횡포와 무뢰로 언론계의 질서를 파괴해도 괜찮은 것인지 묻고 싶다.

 권력의 오만은 가공하다. 그러나 돈의 오만도 그에 못지 않게 무섭다. 특히 부의 성주가 된 재벌이 사회적 책무를 망각하고 알게 모르게 탐욕의 포로가 될때 국가와 사회에 대한 폐해는 엄청나다.

 이러한 재벌일수록 수단방법을 가리지 않고 경쟁자를 정복, 타도하여 군림하려는 마키아벨리스트다. 이들에게는 공·사간에 공정한 게임의식과 공존철학이 결여돼 있음을 우리는 봐왔다. 또한 이들에게는 탐욕과 과대망상과 독선의 나폴레옹신드롬(증후군)도 드러나고 있다.

 더구나 이러한 재벌이 신문·방송등 대중매체를 소유, 언론이라는 사회공기를 가장하여 재벌 그 자신이나 재벌그룹의 이익을 위한 기관지로 악용하거나 오용할때 그 반사회적, 반국가적 역기능은 독 와 국민의 이름으로 심판돼야 하는 것이다.

 현대 언론의 메카라 할 수 있는 미국에서는 관행과 법률에 의해서 산업재벌이나 금융재벌이 언론에 참여하는 것을 막아왔다. 따라서 록펠러, 카네기, 뒤퐁, GM, 포드, IBM, GE, 모건 트러스트등 세계적인 산업 또는 금융재벌들이 오늘날까지 그 흔한 언론기관 하나 갖고 있지 않다.

 미국은 신생국답게 처음부터 국정운영에 「견제와 균형」을 도입, 이를 정착시켰고 또한 이것을 민간부문에까지 확대하여 나라와 사회 전부문에 뿌리내리게 했다. 산업이나 금융재벌들은 일찍부터 반트러스트법에 걸려 그들 자신의 주력업종에서 독점적 지위를 확보하는 것이 제도적으로 차단돼 타업종 특히 언론으로의 외도는 생각지도 않았고 사회적으로 용인되지도 않았다.

 일본은 미국과는 달리 문어발식의 재벌그룹형성이 인정돼왔으나 언론에는 참여치 않고 있다. 이러한 현상은 유럽에서도 마찬가지다.

 돈과 언론이 결합되는 경우 그 언론은 돈의 방패막이가 되게 돼 있다. 돈의 속성에서 나오는 것이다. 우리나라와 같이 시장경제원리를 기업들의 자유방임으로나 알고 있는 후발자본주의사회에서는 처음부터 재벌이 자신의 언론매체에 대해 「사회의 목탁」으로서의 본연의 기능에 충실하도록 소유와 편집의 독립성을 충분히 부여해줄 것을 기대할 수는 없었다. 일부 재벌매체의 제작행태로 봐 이러한 우려는 단순한 기우가 아니었다는 것이 초기부터 입증됐었다.

 문제의 재벌 신문은 신문의 기능과 역할에서 별로 긍정적인 기여를 하지 못했다는 것이 일반적인 평이다. 다른 신문과 다른 특색이 있다면 모기업인 재벌그룹의 이익을 대변하는데 앞장서왔다는 것이다. 오늘날까지 단 한번도 재벌매체로서의 이 한계를 극복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당해 재벌그룹의 이익이 다른 재벌그룹의 이익과 상충될 때는 물론, 나라와 사회의 이익과 배치될 때에도 서슴없이 전자의 편에 섰다.

 이 재벌 신문은 탄생부터가 우리 언론계의 비극이었다. 창간 이후 줄곧 재벌의 논리와 재력의 악용으로 우리 언론시장의 평화를 흔들어왔다. 지금 우리 신문들의 일부 비정상적인 경쟁원리는 이 신문이 씨를 뿌린 것이다. 그런데도 반성은커녕 여전히 그 악습이 되풀이되고 있다.

 이 무법자의 틈입으로 언론계의 질서는 황야가 되었다. 독자가 신문을 사는 것이 아니라 돈을 마구 흩뿌려 신문이 독자를 사는 풍토를 조성하여 독자들을 현혹시켰다. 이런 신문이 아무리 분칠을 한들 정도와 정론의 신문일 수 없다. 신문이라는 가면을 쓰고 있을 뿐이다. 독자들은 언제까지나 그 숨은 정체에 속고 있지 않을 것이다.

 언론의 생명은 독자들의 신뢰다. 한 재벌신문이 사도로 독자들의 신뢰를 떨어뜨림으로써 전 언론에 대한 국민들의 기대에 실망감을 주기 쉽다. 전 언론이 피해를 입게 된다. 우리가 이런 신문을 좌시하고만 있을 수 없는 것은 이 때문이다.

 우리는 언론계의 정화를 위해 꾸준히 노력해오고 있다. 그러나 아무리 자정노력을 한다 하더라도 한 언론계의 악동이 천방지축으로 흙탕물을 끼얹고 다닌다면 깨끗해질 수가 없다. 언론계의 자위를 위해 당연히 제재되어야 마땅하다.

 일부 재벌언론의 폭거는 재벌에 의한 언론의 파괴라 할 수 있다. 그 재벌이 제아무리 무소불위의 힘을 가졌더라도 사이비언론을 앞장세워 언론을 파괴할 권리는 없다. 재벌에 의한 언론의 말살을 언론은 용납하지 않을 것이다.

 이제 우리는 재벌계 신문의 공과에 대해서 성찰해 볼 때가 왔다. 재벌그룹의 대변지역할을 계속 용인해야 할 것인가. 또한 재벌매체가 막대한 자금력을 배경으로 공정한 게임의 규칙을 무시하고 정글식의 무한경쟁을 자행하는 것을 방치해야 할 것인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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