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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평선

입력
1995.03.24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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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매일 아침 서울 신도림역에서 시내로 들어가는 1호선 전철을 탄다. 인천과 수원에서 오는 전철과 2호선 지하철이 만나는 신도림역은 서울에서 가장 붐비는 역중의 하나다. 항상 떠밀리듯 전동차를 타야 한다. 어제(23일)도 예외는 아니었다. ◆가운데로 비집고 들어가 자리잡고 서서 보니 앞의자에 일곱살쯤 된 사내아이가 무릎을 꿇고 승객을 등진채 창밖을 바라보고 있다. 무슨 생각에 잠긴 듯한 그 모습이 천연덕스럽기까지 하다. 전동차가 영등포 대방 노량진 용산역을 지나도록 자세 한번 흩뜨리지 않고 창밖을 주시한다. 마치 수도하는 도사같다. ◆전동차가 남영역에 도착할 무렵 사내아이는 무얼 느꼈는지 갑자기 『할머니 지금 봄이야?』하고 옆에 앉아 있는 70세가까이 된 할머니에게 묻는다. 이를 잘못 알아들은 할머니는 창밖을 내다보며 『그래 남산이야 남산』하고 엉뚱한 대답을 한다. 이 소리에 가까이 있던 승객이 새삼 생각이 난다는 듯 창밖으로 눈길을 준다. 남산이 그곳에 있었다. ◆대학교수가 재산문제로 아버지를 살해하는 패륜사건에다 지방선거를 앞둔 갖가지 어수선함 속에서 우리는 봄이 오는 것도, 남산이 서울시내 한복판에 있는 것조차 잊고 사는 것 같다. 주위를 둘러보면 봄은 벌써 우리들 속을 한참 파고 들어와 있다. 개나리 진달래 목련 라일락등이 꽃망울을 터뜨릴 준비를 하고 있고 쥐똥나무 버드나무가 푸르스름하게 물기를 머금은지 오래다. ◆만원전동차를 타듯 떠밀리듯 살고 있지만 봄은 어김없이 우리를 찾아와 있다. 이를 느낄 만한 여유가 우리에게 없을 뿐이다. 할머니와 손자의 빗나간 대화는 잊었던 봄을 가슴에 안겨주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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