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들 스스로가 의식하지 못하는 후진적 증상이 하나 있다. 이른바 중대발표 신드롬이라는 것이다. 위정자와 권력자의 정치행위가 포고문이나 포고령의 형태로 이루어지던 시절부터의 유습이다. 중대발표가 포고문의 형식이건, 개혁조치라는 형식을 띠건 간에, 그것이 임박해 왔을 때 사회적으로 나타나는 증상은 똑같다. 우선 국민들 사이에 수군거림이 많아진다. 유언비어가 많아진다. 이른바 「카더라」통신이 작동되어 여러가지 「설」이 난무한다. 그래서 진지한 관심보다는 「어찌되나 보다」하는 남의 집 불구경하는 듯한 얄팍한 호기심만 부추긴다.
두번째 증상은 비밀주의이다. 중대발표의 내용을 미리 알아보고자 하는 집요한 노력이 다각도로 전개되지만, 권력자 주변에서는 그것의 사전노출을 한사코 막는다. 철저한 보안을 필요로 하므로 중대발표의 준비는 아무도 눈치챌 수 없도록 극소수의 인원으로, 밀실에서 이루어진다. 그러기에 당연히 그 일에 참여해야 될 것같은 직책에 있는 사람들조차도 정작 그 일을 모른다. 보안 때문에 엉뚱한 이들이 중대발표의 내용을 준비하게 되는 난센스도 가끔 벌어진다.
셋째는 중대발표 후, 국민들 사이에 퍼지는 자포자기와 무력감이라는 증상이다. 최고 권력자의 이름과 권위로 이미 선포된 결정을 누가 번복시키며, 수정 보완하자고 감히 말할 수 있으며, 설사 그런 제안을 한들, 권위의 옹호를 위해서 받아들여지겠는가 하는 무력감이 국민들 사이에 퍼지게 마련이다. 그러므로 국민들 사이에선 또 『어쩔 수 없다. 따라가는 수밖에…』하는 자포자기감이 엄습하게 된다. 이런 세 가지의 중대발표 신드롬은 정책결정의 투명성과 민주성, 그리고 시민의 참여를 가치롭게 여기는 자유민주주의 사회에선 결코 바람직하지 않은 병리적 현상이다.
그런데 이런 증상이 요즈음 새롭게 되살아나고 있다. 금년 초에 대통령이 상반기 중에 중대한 교육개혁조치를 내리겠다고 한 언약을 기폭제로 해서 중대발표의 시기와 내용을 두고 그런 「중대발표 신드롬」이 확산되어 지금 현재는 그 절정에 이르고 있지 않나 생각된다. 국민들 사이에 중대발표가 무엇이 될지에 대한 수군거림과 유언비어가 많다. 파격적 조치가 포함되어 있을 것이라는 소문에서부터, 뭐 별 뾰족한 대안이 있을 수 있는가에 이르기까지 점치고 있는 사람이 많다.
대한민국의, 백성이 아닌, 국민들이 왜 자신들의 삶과 관련된 교육문제에 대해서 참여가 아닌, 점만 치고 있어야 하는가. 중대발표는 지금 어디에서 준비되고 있는가. 중대한 사안일수록 정당한 절차(DUE PROCESS)에 따라 투명하게 이루어져야 한다. 교육개혁조치에 대한 대통령의 결심은 교육개혁위원회의 구성을 통해 드러난 바 있다. 이 기구를 통해서 교육개혁을 이룩하겠다는 의도를 국민들에게 천명한 게 아닌가. 그렇다면 교육과 관련된 중대발표는 당연히 교육개혁위원회를 중심으로 준비되어야 할 것이다. 국민들도 그렇게 알고, 교개위에 많은 의견을 보내고 있다. 그런데 중대발표를 앞두고, 교육개혁위원회는 개점휴업상태인 것처럼 보인다. 중대발표에 대한 문의에 『우리는 모른다』고 하면, 과연 어디에서 누가 교육개혁을 준비하고 있는가.
가령, 교개위가 중대발표 준비를 하고 있지 않다면 정부조직법상 교육을 담당케 되어 있는 교육부의 전문관료가 그런 준비를 맡아야 할 것 아닌가. 그것이 정당한 절차이다. 그런데 교육부에서도 『우리도 잘 모른다』고 하면 도대체 어디에서 그 준비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인가. 국회에서 국민을 대리하여 국정을 관장하고 있는 교육위원회 소속의 국회의원들조차도 중대발표의 준비과정을 잘 모르고 참여하고 있지 않으며, 그들조차도 소문과 유언비어에 휩쓸리고 있다면 교육개혁은 과연 누가 주도하는 것인가.
미국이 「아메리카 2000년」이라는 교육개혁안을 준비하는데 9년이 걸렸다. 비밀스럽게 만들어진 계획안의 중대발표가 아니었고 투명하고 공개적인 토의를 통해서 드러난 입장을 정부가 교통정리만 한 것이었다. 일본이 8년간에 걸쳐 마련한 교육개혁안도 마찬가지였다. 정부의 중대발표 형식으로 선언된 개혁안이 아니었고 국회에서의 치열한 공방을 통해서 이룩된 개혁안이었기 때문이다.
80년의 7·30 교육개혁조치가 중대발표 신드롬을 일으킨 전형적 예이며, 그것이 마지막 예이길 바란다. 15년씩이나 지난 지금에서는 좀 더 달라진 절차로 교육개혁안을 만들 수 있어야 하는 것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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