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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수입 대부분 학교발전 투입/숨진김형진씨 「육영사업」 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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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년수입 대부분 학교발전 투입/숨진김형진씨 「육영사업」 꿈

입력
1995.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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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회사 걸러도 학교엔 매일 출근/“지원걱정마라” 최고교육 독려 아들의 손에 살해된 아버지 김형진(73)씨는 평양 출신으로 1·4후퇴때 월남해 자수성가했다. 동대문시장에서 포목장사로 큰 돈을 벌어 부동산관리회사등을 운영하면서 수백억원대의 재산을 형성하자 오랜 꿈이던 육영사업에 나섰다.

 81년 강서구 내발산동 우진여고를 인수해 덕원중·여고로 개명, 육영사업에 첫발을 내디뎠다. 평양 광성학교를 나와 단신으로 월남, 상급학교 진학의 꿈을 이루지 못한 한이 있어 김씨의 교육열은 더욱 남달랐다.

 모기업인 해강기업(주)에는 1주일에 한두번 정도 나가며 일을 봤지만 금룡학원 사무실에는 거의 매일 출근하다시피 했다. 『최고 학원이 될 때까지 적극 지원할테니 여러분들은 학생 지도에만 최선을 다해달라』

 ― 학교에서 교사들과 모여앉을 때마다 입버릇처럼 외친 말이다.

 김씨는 자신의 수입중 90%가량을 학교에 쏟아 부었다. 김씨 밑에서 20년 넘게 일해온 최영석(51·덕원여고 서무부장)씨는 『이사장님은 1년 총수입 20억원중 18억원을 학교재정에 투자해 왔다』고 밝혔다.

 김씨의 재정지원에 힘입어 학교환경이나 시설은 국내 최고수준을 유지했고 우수교사 스카우트에도 성공해 덕원여고는 신흥명문고 대열에 끼게 됐다. 88년 김씨는 「사후 금룡학원에 대한 지속적인 지원 및 재산기부를 하라」는 내용의 유언장을 만들어 해강기업사무실 금고속에 보관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으며 가족에게도 종종 『사업이 망해도 학교는 포기할 수 없다』고 말하곤 했다.

 김씨는 92년 덕원예술고등학교도 설립, 어릴 적부터 꿈꿔온 교육사업의 마스터플랜을 이루었으나 겨우 1회 졸업생을 배출한 덕원예고가 정상궤도에 오르기도 전에 횡액을 당했다.<이상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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