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박사살인범」 숨막힌 수사게임/처음엔 알리바이 조작 완강저항/가족통한 우회기법에 결국자백 김형진씨 피살사건 수사는 수사진과 「박사 살인범」간의 숨막히는 게임의 연속이었다.
김은 범행후 자신에게 쏠릴 시선을 우려, 철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알리바이를 조작하려 했으나 경찰은 외곽을 돌려치는 수사기법을 사용, 결국 자백을 받아냈다.
경찰은 당초 범행현장이 구조상 외부인의 침입이 불가능하고 살해된 김씨의 대인관계가 원만했던 점을 중시, 처음부터 내부인의 소행으로 단정하고 수사에 착수했다. 그러나 뚜렷한 목격자나 물증을 찾아내지 못한데다, 유력한 용의자인 큰아들 김성복(41)이 『아버지를 잃은 사람을 범인으로 의심할 수 있느냐』고 역공, 일단 귀가조치할 수 밖에 없었다. 교수신분에 상주라는 점도 큰 부담으로 작용했다.
부검결과 큰아들을 의심하던 경찰도 『전문가 수법이다. 아들이라면 도저히 아버지를 그런 수법으로 죽일 수 없다』며 수사방향을 바꾸지 않을 수 없었다.
범행당일 동료교수 3명과 집앞에서 술을 마시다 옷을 갈아입고 오겠다며 자리를 뜬 것도 알리바이를 조작하기 위한 철저히 계산된 행동이었다. 외부범죄로 위장하기 위해 5층의 비상계단 철문을 미리 열어놓고 일부러 혈흔을 남긴 점도 경찰의 수사방향을 헷갈리게 했다.
수사가 벽에 부닥치자 경찰은 김의 사업및 부채관계등으로 수사방향을 선회, 결정적인 실마리를 잡았다. 큰아들이 지난해 5월 아버지 몰래 9억원을 투자해 설립한 해강농수산(주)이 최근 심각한 자금압박을 받아 부도위기에 몰린 사실을 김씨 장례일인 18일 밝혀낸 것이다.
장례식이 끝난 19일 상오 김의 범행을 뒷받침하는 결정적인 목격자가 나타나 수사는 급진전됐다. 덕암빌딩 경비원 안모(55)씨가 『범행당일 김이 스포츠가방을 들고 건물로 들어가는 것을 봤다』고 진술했고, 빌딩 5층 디자인학원 수강생 전모씨등 2명은 『사건발생직후 6층에서 내려오던 엘리베이터에 탄 김의 왼쪽뺨에 핏자국이 있고 운동복 소매안에 과도 비슷한 것을 절반은 숨기고 절반은 손으로 감싸쥐고 있었다』고 말했다.
경찰은 장례식이 끝난 뒤 어머니등 가족을 불러 『큰아들이 범인인 것같으니 자수하도록 설득시켜 보라』고 귀띔해뒀다. 이어 가족의 신고로 김을 연행, 『검은 마스크와 장갑을 본 사람이 있으니 빨리 자백하라』고 다그치자 김은 『마스크를 쓴 공범이 일을 저질렀다』며 한동안 발뺌하다 모든 것을 포기한듯 범행사실을 순순히 털어놨다.<김성호 기자>김성호>
◎김이사장 피살사건 수사주변/미추리소설 읽고 범행은폐 기도/가족회의서 어머니 추궁에 「광기」
패륜살인범 김성복은 범죄추리소설등을 읽고 「완전범죄」를 꿈꾼 듯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하고 범행 은폐를 기도하는 간교함을 보였으나 결국 어머니의 추궁에 자제력을 상실, 범행이 드러났다.
○…김의 어머니(63)는 경찰이 큰아들을 범인으로 지목하고 있다는 말을 듣고 19일 밤 둘째딸 집에 김을 포함한 5남매 부부를 불러 가족회의를 열고 경찰 수사상황을 알려준 뒤 큰아들에게 『정말 아버지를 죽였는지 솔직히 말하라』고 추궁한 것으로 알려졌다.
이 때 김은 당황해하며 눈빛이 「광기」를 띠는등 충동적 행동을 할 기미를 보였다는 것. 이에 가족들은 경찰에 급히 『큰 아들이 이상하다』고 연락, 기다리던 형사대가 김을 연행해 철야 조사끝에 범행을 자백받았다.
○…김은 사건 다음날 『어머니가 용의자로 몰릴지 모른다』며 변호사를 선임하는등 범행은폐에 나섰다. 또 경찰이 김의 진술이 앞뒤가 맞지 않는 점을 지적하자 『아버지를 잃은 사람을 이렇게 대우해도 되느냐』고 큰 소리를 치는등 당당한 태도를 보였다.
○…경찰은 김의 방에서 이번 사건과 범행동기 수법등이 비슷한 미국소설 「상속자」「추적」등의 추리소설 2권을 발견, 김이 이 책의 범행방법을 모방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덕암빌딩 경비원 안기용씨는 『대학교수나 되는 아들이 돈때문에 그런 일을 저질렀다니 인생이 허무하다』고 말했다.<남경욱·박진용 기자>남경욱·박진용>
◎“재산상속 장남제외”유언/김이사장 육성테이프 발견
○…살해된 김이사장은 93년 6월 『부동산 일부를 딸과 작은 아들에게 분배하고 나머지는 재단에 기부한다』는 내용의 유언을 육성으로 테이프에 담아 종로 6가 한덕빌딩 10층에 있는 자신의 사무실 금고에 보관한 것으로 밝혀졌다.
김이사장은 덕원예고 최모교장등 2명이 증인으로 입회하게 해 작성한 유언에서 「재단은 5남매 공동소유로 하고, 이사장은 이사회에서 선임하되 가족과 이사회 임원들이 투표를 통해 민주적으로 선출하라」고 지시했다.
경찰은 이에 따라 큰아들 김이 유언내용을 알고 범행했으며, 범행후 테이프를 찾아 폐기하려 했을 가능성이 높은 것으로 추정하고 있다.
그러나 범인 김은 『88년초 아버지가 재산을 남동생(33·대학병원 레지던트)과 절반씩 나눠 상속하도록 유언장을 작성한 뒤 동생에게만 준다고 고쳤다가 폐기된 것으로 알뿐 그후의 유언테이프에 대해서는 모른다』고 주장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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