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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패륜(사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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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성의 패륜(사설)

입력
1995.03.2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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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충격과 경악을 넘어 이젠 차라리 깊은 허탈에 빠진다. 인륜이 부끄럽고 지성은 추악하다. 돈이 뭐길래, 돈이 무섭다. 부모는 자식이 두렵다. 가정과 사회가 날개도 없이 악의 구덩이로 추락하고 있다. 아버지와 아들은 혈육관계가 아닌 재산상속자관계로 전락해버렸다. 학원이사장을 전문킬러처럼 칼로 찌른 살인범은 놀랍고 끔찍하게도 대학교수인 40대의 아들이었다. 허구의 소설이라도 그 잔혹성에 치가 떨릴텐데 이것이 엄연한 현실이니 눈앞이 캄캄할 따름이다.

 상속자인 아들은 상속에 불만을 품고 치밀하게 범행을 계획했고 장례까지 태연하게 치렀다. 부모의 은덕으로 미국에 유학을 다녀오고 대학강단에 선 지성인의 얼굴은 어이없게도 「지킬박사와 하이드씨」의 양면성을 그대로 드러냈다. 황금주의와 물질만능이 패륜의 황폐성을 극대화시킨 것이다.

 패륜사건은 날로 급증하고 있다. 지난 93년에만 부모살해 폭행등이 1천4백여건에 이르렀다. 박한상군 사건이 엊그제 같은데 또 이런 험한 꼴을 보는 심경은 참담하기만 하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재산모으기와 증식에만 몰두했다. 재산이 마치 인생의 목표이기나 한듯 오인한 것이다. 재산불리기에 열중했지 재산의 선용은 미처 생각하지 않았다. 이렇게 전도된 가치관이 끝내 가족관계에 침투했다.

 그리하여 가정을 지탱한 인륜은 점점 자체 정화능력을 잃어가며 스스로 파괴당하고 있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니고 무엇이겠는가. 게다가 생명 경시의 경향까지 엎치고 덮쳤다. 부모의 목숨을 우습게 여기고 예사롭게 비수를 들이대게 되었다. 이 현상을 우발적인 것으로 볼 수 없다.

 이 마당에 우리는 그냥 좌절해서는 안된다. 지금과 같은 부모의 침묵이 결코 애정이고 미덕은 아니다. 자녀를 향해 입을 열고 채찍을 드는 부모의 모습을 회복할 필요가 있다. 엄하고 자애로운 자리를 다시 찾아야 한다는 것이다.

 아울러 재산에 대한 가치관의 정립과 교육이 요구된다. 벌어서 쓰고 남은 돈은 모두가 자식의 몫이 아니다. 마땅히 사회로 돌아갈 부분이 있음을 알고 자녀에게도 깨우쳐야 할 것이다. 재산증식의 집념만큼 환원의 용기도 중요하다.

 인륜과 혈육은 동의어나 같다. 재산 우위의 가족관계는 언제고 뿌리가 흔들리고 가정을 무너뜨린다. 돈만 있고 어리석은 자식을 기르는 것 자체가 우매한 일이다.

 우리 사회에 만연한 물신주의에서의 탈피를 재촉하지 않으면 건전사회는 결코 기대하지 못한다. 구원의 손길은 우리 안에서 찾아진다. 최고의 가치는 언제나 생명이며 그 생명은 부모에게서 연유함을 깊이 성찰해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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