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렴한 법률서비스 방안 찾자”/“절대수 부족 고액화원인” 열띤공방/법률보험·공익법무관제 확대도 현실내 대안 변호사계 개혁논의는 「국민들이 저렴한 비용으로 쉽게 변호사의 도움을 받을 수 있는 길은 무엇인가」라는데 초점이 모아진다.
이 물음을 두고 정부와 학계 법조계가 첨예한 논쟁을 계속하고 있지만 어느쪽도 확실한 해답을 제시하지는 못하고 있다.
정부와 학계의 적극개혁론자들은 문제의 바탕을 변호사수의 절대부족에서 찾고 있다. 소수의 변호사가 시장을 독점하고 있는 구조가 수요와 공급의 균형점에서 가격이 결정되는 시장경제 원리를 왜곡, 고가의 수임료 구조를 형성해 서민들의 법률서비스 접근을 막고 있다는 것이다. 이들은 또 전관예우 폐단이 수임료 고액화를 부채질, 「유전무죄 무전유죄」의 냉소적 가치구조를 심화시키고 있다고 지적한다.
적극개혁론자들은 특권의식과 집단이기주의로 무장한 변호사계가 이같은 문제점을 스스로 도려내기를 기대하기는 어렵다고 보고 있다. 때문에 변호사 수를 대폭 늘려 높은 문턱을 낮출 수밖에 없다고 주장한다.
독과점 체제에서 고수익을 누려온 변호사들에게 완전한 시장경제원리를 강요해야만 수임료 인하효과와 서비스 향상을 기대할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러나 개혁의 도마 위에 오른 변호사들은 『정부와 학계의 처방은 현실에 대한 단편적 이해에 근거한 맹목적 이상론에 불과하다』고 반박한다.
전관예우와 과다수임료는 반드시 근절돼야 할 변호사업계의 대표적 병폐이긴 하지만 일부에 국한된 문제이며 특히 변호사의 절대 숫자가 부족해서 생기는 현상은 아니라는 주장이다.
이들은 93년 우리나라 민사소송사건의 변호사 선임률이 37.6%이고 특히 소송가액 1천만원이하인 소액사건의 변호사 선임률은 2.6%에 불과하다는 통계를 「변호사 문턱이 높다」는 증거로 사용되는 것에 반론을 제기하고 있다.
판례법체계인 미국이나 영국에서는 변호사의 도움없이 소송을 진행할 수 없지만 법관의 직권주의 색채가 강한 우리나라에서는 법관의 소송지휘에 따라 당사자가 직접 소송을 수행하거나 법무사등 변호사가 아닌 사람이 소송을 대리하는 경우가 흔한 사실을 간과하고 있다는 것이다.
특히 변호사 업무는 고도의 전문성을 갖고 있어 「공급이 늘면 가격이 떨어진다」는 공산품의 가격결정원리가 변호사 수임료에 그대로 적용되지 않는다는 것은 「변호사 대국」 미국에서 검증된 사실이다.
변호사계는 이같은 맥락에서 변호사의 대량공급을 통해 기존 제도를 일시에 무너뜨리는 혁명적 개선책보다는 현 제도의 골격을 유지하는 선에서 법률서비스의 질을 높이는 것이 우리의 법률문화와 여건에 보다 적합하다고 주장하고 있다.
법조계는 독일과 같은 법률보험제도를 도입하거나 공익법무관제도를 대폭 확대하는 방안을 국민들이 쉽게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는 현실적 대안으로 제시하기도 한다.
특히 전관예우의 폐해를 막기 위해서는 판검사출신 변호사가 최종 근무지에서 개업하는 것을 일정기간 제한하거나 관련사건의 수임을 제한하는 방안과 법조일원화의 조기정착, 불구속수사 원칙을 구체적으로 실행하는 방안등을 깊이있게 연구할 것을 강조하고 있다.<김승일 기자>김승일>
◎나의견해/모든 법률적 문제 변호사 조언 전제는 오히려 서민부담 늘려/김재옥 사무총장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모임
현재 변호사수가 너무 적고 수임료도 너무 비싸 소비자들이 충분한 법률서비스를 받기 어렵다는데는 동의한다. 특히 최근 변협이 수임료 상한선을 현재의 두배 수준으로 올리겠다고 밝힌 것을 계기로 그동안 누적됐던 법조계에 대한 국민들의 불만이 한꺼번에 폭발되고 있는 것 같다.
『어렵게 마련한 돈을 주고 사건을 맡겼는데도 변호사 얼굴을 볼 수 있는 것은 처음 몇번 뿐이고 사무실로 찾아 가도 사무장 밖에 만날 수 없는 경우가 허다하다』 『재판은 몇달씩이고 질질 끄는데 돈은 매번 꼬박꼬박 내야 하니 밑빠진 독에 물붓는 느낌이 들 때가 많다』
「소비자문제를 연구하는 시민의 모임」에도 많은 소비자들이 이런 불만을 호소하고 있는 것을 보면 법조계 전반에 변화와 개혁이 필요한 것만은 사실이다. 그러나 변호사수를 얼마나 늘려야 할지를 결정하기에 앞서 먼저 장래의 수요, 변호사가 필요한 분야에 대한 철저한 연구가 선행돼야 한다. 또 변호사를 늘린다고 해서 이러한 문제들이 곧바로 해결될 수 있을지도 충분한 검토가 있어야 한다.
철저한 연구도 없이 변호사업계의 모든 문제를 변호사수 부족에서 비롯되는 것으로 단정, 대폭 증원에서 해결책을 찾는 것은 비과학적일 뿐 아니라 위험스럽게까지 보인다. 변호사수를 대폭 늘린다고 수임료가 서민들이 충분히 감당할 수 있는 수준으로 낮아질지도 의문이다.
최근의 개혁논의와 관련해 또 한가지 염려스러운 것은 법률적인 모든 문제의 해결에 변호사들의 조언이 있어야 한다고 전제하는 점이다. 미국처럼 주택매매나 임대차 계약서 한장 쓰는 일, 간단한 소송을 하는데도 변호사의 도움없이는 안된다면 오히려 서민들의 부담은 늘어나지 않겠느냐는 것이다.
변호사업계의 개혁방향은 변호사가 반드시 필요한 경우에 시민들이 쉽게 도움을 얻을 수 있는 방안을 찾는데 초점이 맞춰져야 한다. 의료보험으로 의료혜택의 폭을 획기적으로 넓힌 것과 같이 국민들이 큰 부담없이 법률서비스를 받을 수 있도록 「법률보험」등의 도입을 적극 검토하기 바란다.
◎수임료 실태/“거액 성공사례비 선금받고 패배해도 안돌려줘”/변협「보수기준」 말뿐… 상한액 3∼10배 받기도
자동차 정비공장을 운영하는 K씨부부는 경영난에 처한 정비공장을 팔려다 사기범으로 몰려 K씨는 구속, 부인 L씨는 불구속 기소돼 재판을 받게 됐다. 피해자가 주장하는 「사기금액」이 6억2천만원이나 돼 K씨 부부는 자칫하면 3년이상의 징역형이 선고될 위기에 몰렸다.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은 심정인 K씨는 주위의 소개로 H변호사를 변호인으로 선임했다. 조건은 착수금 3백만원에 무죄판결을 받아 석방되면 이른바 「성공 사례비」로 4천만원을 준다는 것이었다. H변호사는 이 수임료를 자신의 계좌에 미리 넣을 것을 요구했다. 그러나 그는 돈을 받은 뒤 증인들의 위증이나 날조된 증거를 밝히는등 재판진행에는 전혀 신경쓰지 않고 피해자와 합의할 것만을 종용, 결국 K씨 부부는 사형이 선고됐다. 이들 부부는 변호사에게 성공 사례비를 돌려 줄 것을 요구하다가 거절당한 뒤 소비자단체에 H변호사를 고발했다.
지방군청 7급공무원 N씨는 지난해 관내 업자에게서 50만원의 뇌물을 받은 혐의로 구속된 뒤 유명하다는 L모 변호사를 선임했다. 변호사는 착수금 2백50만원에 보석석방시 사례비 3천5백만원을 내라고 요구했다. N씨는 『말단 공무원이 그런 큰 돈이 어디 있느냐. 깎아 달라』고 호소했으나 통하지 않았다. 다행히 N씨는 한달뒤 보석으로 풀려났다. 그러나 변호사 수임료를 주기 위해 진 빚을 갚기 위해 N씨는 뇌물을 준 업자에게서 다시 돈을 뜯어내려다 공갈혐의로 구속됐다. 과다한 변호사 비용이 새로운 범죄를 부추긴 셈이다.
대한변협은 지난달 25일 형사사건의 경우 착수금과 성공보수금 상한을 5백만원에서 각각 1천만원으로 올리는 것을 골자로 하는 「변호사보수규칙 개정안」을 채택하려다 비난 여론이 높자 보류했다. 변협은 『임의규정인 현행 보수기준을 강제규정으로 만들기 위해 상한금액을 현실화한 것』이라고 취지를 해명했으나 여론은 『가뜩이나 높은 변호사 수임료를 올리려는 것은 파렴치한 짓』이라며 거센 사법개혁 요구를 외면하는 변호사업계를 매도했다.
실제 변협의 「변호사보수기준」은 처벌조항이 없는 선언적 규정에 불과해 제대로 지키지 않는 변호사들이 많다. 형사사건의 수임료 상한액은 착수금과 성공보수금(사례비)이 각각 5백만원이지만 변호사에 따라 상한액의 3∼10배까지 챙기고 있다. 또 구속적부심 보석신청등 단계별로 성공보수에 관한 약정을 맺는 경우도 많다. 민사사건 역시 통상 「승소할 경우 토지지분의 3분의 1을 준다」는 식의 약정을 맺거나 소송물 가액에 따라 수억∼수십억원을 받는 변호사들도 있다.
지난 1월 시민단체가 서울지법 방청인 1백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 응답자의 63%가 『변호사수임료가 너무 비싸다』고 답했다. 지난해 서울지방변호사회에 접수된 소송의뢰인의 진정 1백67건중 62%인 1백1건이 「과다수임료」문제였다. 바로 이같은 현실이 『비싼 변호사 비용을 낮추려면 변호사 수를 대폭 늘려야 한다』는 주장을 낳고 있고, 여론의 지지를 받는 바탕이 되고 있는 것이다.
그러나 「변호사 대국」 미국의 변호사들이 상업적 경쟁에 매달려 소송을 부추기는등 「소송산업」의 첨병이 되는 폐단을 지적하는 이들은 우리도 변호사를 무턱대고 늘리면 미국의 전철을 밟게 될 것을 우려한다. 이에 따라 이들은 변호사는 「공익에의 봉사자」라는 전통을 유지하고 있는 독일처럼 변호사 보수를 법률로 규정하거나 정부가 변협의 보수기준 마련에 적극참여하는 방향으로 해결해 나갈 것을 주장하고 있다.
변호사 보수문제는 정부측 개혁론자들과 일부 학자들이 주장하듯이 변호사를 미국식의 「비즈니스 맨」으로 만드는 방안으로는 결코 해결할 수 없다는 지적이다.<박정철 기자>박정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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