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버지와 어머니의 직업, 살아가는 방식, 가치관과 취미등을 자녀들이 좋아하고 이어받는것은 아름답게 보인다. 유전적으로 부모를 닮는데 그치지 않고, 닮으려고 노력한다는 것은 부모를 사랑하고 존경한다는 뜻이다. 그러나 존경과 사랑 대신 증오와 절망을 느끼게 하던 부모의 어떤 점을 이어받는 자녀들도 있다. 알코올중독과 폭력은 가족을 불행하게 하는 대표적인 증세인데, 그 두가지가 모두 대물림되기 쉽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대부분의 알코올중독은 유전인자에 의한 질환이고, 폭력을 휘두르는 성격 역시 어린시절 매맞으며 쌓인 정신적 상처가 영향을 미친다는 사실이 밝혀진바 있다.
대법원 형사2부(주심 김형선대법관)는 최근 한 40대 피고인에 대한 검찰의 보호감호 신청을 기각했던 원심을 파기하면서 『재범의 위험성은 성격·성장과정·가족관계등 모든 사정을 종합, 객관적으로 판단해야 한다』고 강조하여 관심을 모았다. 폭력등 전과 6범으로 통합 7년10월의 징역을 살았던 그 남자는 출소 두달만에 술집등에서 협박·갈취행각을 벌인 혐의로 구속됐는데, 『과거 전과가 모두 우발적인 주벽에 의해 저질러진만큼 재범위험성이 있다고 보기 힘들다』는 이유로 1심·2심에서 모두 보호감호 신청이 기각되었다.
대법원이 주목한 그의 성장과정은 주벽이 아버지로부터 대물림되었음을 말해주고 있다. 그는 술만 마시면 가족을 때리는 아버지때문에 고통을 겪다가 고교때 가출하여 학업을 중단했고, 마구 술을 마시며 폭력을 휘두르게 됐다. 그 자신과 그의 어머니가 그랬던 것처럼 그의 아이들과 아내는 가장의 주벽과 폭력으로 전전긍긍하는 불행한 삶을 살고 있다.
그에 관한 재판을 맡았던 제주지법과 광주고법은 그의 주벽을 우발적인 것으로 보았으나, 대법원은 성장과정에서부터 뿌리내린 고질적인 것으로 보고 있다. 대법원의 관점은 자칫 위험하게 흐를 가능성이 있으나, 주벽과 폭력의 속성을 외면하지 않고, 자녀양육의 중요성을 깨우치고 있다는 점에서 매우 뜻깊게 느껴진다.
알코올중독과 폭력으로 가족을 불행하게 하는 아버지가 있다면, 그 불행이 확대재생산되지 않도록 자녀들에 대해서 온 사회가 관심을 가져야 한다. 사회단체들은 알코올중독자 자신이나 「매맞는 아내」뿐 아니라 자녀들을 위한 프로그램을 마련해야 한다.
한 신문은 그 피고인이 「아버지의 길」을 뒤쫓아 갔다고 썼는데, 그것은 너무나 슬픈 길이다. 불행의 대물림, 유전인자의 무서운 사슬을 끊는 자각을 자녀들에게 심어주는 일은 아버지를 치료하는 일보다 더 중요하게 다뤄져야 한다. 그것은 수많은 죄없는 사람들의 불행을 막아주는 일이기 때문이다.<편집위원>편집위원>
기사 URL이 복사되었습니다.
댓글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