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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보다 즐거움으로(1,000자 춘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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성적보다 즐거움으로(1,000자 춘추)

입력
1995.03.12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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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우리 아이는 아주 어릴 때부터 많은 미술재료들를 자연스럽게 다루면서 자랐다. 그림물감, 진흙, 석고, 가죽, 필름, 비디오, 컴퓨터까지. 때론 어른들의 일을 도우면서 살며시 작업에 끼여들기도 했다. 말을 겨우 하는 어린 시절에 『이건 작품이다』라는 소리를 해서 우리를 새삼 놀라게 하기도 했다. 그런데 학교엘 다니고 성적표를 받아오기 시작하면서 나는 이제까지와는 다른 의미로 놀라게 됐다. 미술성적이 한두번인가 「우」를 받고는 줄곧 「양」이었기 때문이다. 지난 학기에도 「양」을 받아왔다. 맨 처음에 「양」자를 보았을 때는 충격적이었다. 그래도 겉으로는 태연하게 아이한테 말했다. 『미술은 매우 주관적인 것이다』라고.

 그리고 길고 긴 해설을 덧붙였고 여러가지 예를 들어가면서 설명했다. 속으로는 아이가 스스로 조형감각이 뒤떨어진다고 생각할까봐 걱정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해주었다. 또 미술숙제등 미술과 관련된 모든 일에 철저히 무심한 척했다. 무엇이든지 혼자 하도록 내버려 두고 지켜보기만 했다. 나중에는 아이도, 부모도 미술성적에 대해 진짜 무심해져 버렸다.

 요즈음 아이의 장래를 생각해보면서 그 애가 택할 직업속에 화가나 조각가를 제외하지는 않고 있다. 그러면서 혹시 미술성적이 아이의 직업선택에 영향을 끼치지는 않을까 염려하기도 했다.

 어느날 무심한 척 하면서 아이에게 물었다. 『넌 커서 화가가 되고 싶지는 않니』라고 묻자, 아들은 『엄마처럼 그림그리는 일이 좋긴 한데 친구들과 어울려 놀지도 않고 매일 그림만 그리는 생활은 못 참을 것같다』며 친구들과 함께 즐겁게 일할 수 있는 그런 직업을 갖고 싶다고 했다.

 그러면서 『직업화가는 되기 싫지만 취미로 그림을 그릴거야. 평생동안 즐겁게 그림을 그리면서 살거야』라는 말을 덧붙였다.

 나는 기뻤다. 무엇보다도 우리 아이가 성적표의 미술성적을 전혀 개의치 않는 것같아서.<김점선 서양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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