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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한동일서 장한나까지/울창한 거목으로(광복분단 50년: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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음악/한동일서 장한나까지/울창한 거목으로(광복분단 50년:25)

입력
1995.03.11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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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양락도입 1세기만에 한민족재능 과시/미흡한 교육체계·엘리트치중 등 한계도 광복 이후 50년 동안 한국의 음악나무는 어느덧 세계를 향해 울창한 가지가 뻗은 거목으로 성장했다. 큰 나무의 열매로 우리 음악인들이 국제무대에서 발하는 향기는 세계인들을 매료시키고 있다. 지난해 로스트로포비치 첼로콩쿠르에서 대상을 차지한 12세의 신동 첼리스트 장한나는 세계 음악계의 보물로 대접받고 있다. 거장 미샤 마이스키는 『누구도 그 아이를 함부로 가르쳐선 안된다』며 장한나의 천재성에 경외심을 표시한다.

 로스트로포비치도 『한나가 잘못되면 내가 죄를 짓는 것』이라며 장한나의 음악생활을 직접 관리하고 있을 정도다. 세계 음악계에 혜성처럼 등장한 10대 바이올리니스트 장영주는 자신의 황홀한 색채를 마음껏 뿜어내며 음악애호가들을 사로잡고 있다. 그는 어린 나이에 이미 거장의 경지에 오른 것으로 평가받고 있다. 지휘자 주빈 메타는 『영주는 천재라는 말만으로는 부족하다』고 극찬했으며 지휘자 네빌 마리너는 『내가 1백50년간 공부해야 할 분량을 지금 가지고 있다』고 한 술 더 떴다.

 세계무대에서 각광받고 있는 우리 음악가들은 이들만이 아니다. 차이코프스키 콩쿠르에서 1등없는 2등에 오른 바이올리니스트 제니퍼 고, 김지연(바이올린), 황수지(〃), 줄리엣 강(〃), 유니스 리(〃),데이비드 김(〃)등 많은 젊은 음악인들이 새로운 별로 빛나고 있다. 지휘자 카라얀이 「신이 내린 목소리」라고 극찬한 소프라노 조수미와 신영옥, 홍혜경은 세계의 프리마돈나로 우뚝 서 있다. 피아니스트 백건우, 바이올리니스트 정경화, 강동석, 첼리스트 조영창등도 자신들이 구축한 정상의 입지를 탄탄히 지켜 나가고 있다. 또 더 많은 우리 어린 연주가들이 정상을 바라보며 기량을 닦고 있다.

 우리의 음악가가 세계무대에 알려지기 시작한 것은 60년대. 「천재 소년 피아니스트」 한동일은 13세때인 54년 체계적 음악공부를 하기 위해 도미, 줄리아드 예비학교에 입학했고 65년 리벤트리트 콩쿠르에서 1위에 오르며 화려한 음악인생을 시작했다. 정경화는 이보다 2년뒤인 67년 리벤트리트 콩쿠르에서 줄리아드 동문인 핀커스 주커만과 공동 우승, 정상의 연주가로서 첫 발을 내디뎠다. 한국음악가의 국제콩쿠르에서의 입상과 세계무대 데뷔행진은 백건우 김영욱 정경화 정명훈 강동석등으로 이어졌으며 이들의 성공은 국내 음악영재교육에 불을 댕겼다.

 하지만 50년동안 자라온 우리 음악나무의 한 켠에는 심각하게 고민해야 하는 어두운 그늘이 드리워져 있다. 세계정상의 연주자로 발돋움한 우리 음악가들은 하나같이 외국에서 교육받고 성장한 사람들이다. 오늘의 우리 음악을 일궈온 원로·중진 음악인들의 노력에도 불구하고 국내의 체계적 음악교육은 아직 정착되지 못했으며 그나마 엘리트교육에 치중돼 있다. 음악은 아직도 사치이며 입시부정등 부작용과 문제점도 한두가지가 아니다.

 이 땅에 서양음악이 들어 온지 1백년만에, 광복을 맞은지 50년만에 세계무대에서 한국인들이 중요한 활약을 하게 된 것은 우리 민족의 뛰어난 음악적 재능 덕분이었다. 많은 음악인들은 이 재능을 더욱 빛나게 하기 위해서는 「천재를 천재로 키울 수 있는」 교육체제의 확립이 시급하다고 강조한다. 음악을 삶 자체에서 향유하는 사회분위기 조성과 이를 지원하는 국가차원의 음악정책이 필요하다고 지적한다.

 순수한 우리 교육으로 키워낸 음악가가 세계정상에 서는 날 우리 음악나무는 진정한 거목으로 자리잡을 것이다.

 음악평론가 한상우씨는 『광복 50년을 맞아 문화예술이, 특히 음악이 왜 존재해야 하는가에 대해 다시 생각해야 한다. 청중을 감동시키는 음악, 삶을 살찌게 하는 음악, 사회를 풍요롭게 하는 음악을 만들기 위해 모두가 노력하자』고 말했다.<김철훈 기자>

◎국악 반세기/60년대들어 관현합주곡 등 창작활발/대중기반확대 가속… 통속화 비난도

 광복이후 전통음악을 보존·계승하려는 노력은 51년의 국립국악원 개설과 64년부터의 문화재지정등으로 이루어졌다. 국립국악원은 일제강점기에도 아락을 계승해온 이왕직 아락부의 전통을 이어 미미한 수준이나마 정락의 연주와 악사양성등에 주력했다. 또 무형문화재는 종묘제례악·판소리등 94년까지 39종이 지정돼 우리 소리의 전수에 기여해왔다.

 국악 50년사에서 가장 주목할 만한 일은 60∼70년대 김기수 백병동 강석희등 작곡가들의 국악창작이다. 신국악으로 불리게 된 기악독주·중주·관현합주곡등은 60년대부터 시작해 70년대에 괄목할 만큼 성장했고 활발히 연주됐다. 59년 개설된 서울대 국악과등 대학 정규과정에서 배출된 음악인들과 70년대이후의 경제발전이 밑받침한 결과이다.

 70년대 국악공연의 확대는 판소리 민요 창극등에서도 두드러졌다. 판소리 완창무대와 창극공연등이 관객들을 확보해 갔고 풍물을 재구성한 사물놀이는 78년 첫 공연을 가진 이후 젊은 층에 깊이 파고들었다.

 80년대부터 94년 국악의 해에 이르기까지 전통음악은 대중의 생활에 한결 가까이 다가갔고 인식이 크게 확대되었으며 해외공연도 활발해졌다. 그러나 국악의 해에 체계적 발전을 이끌어 낼만한 획기적 성과는 얻지 못했다. 전통음악의 상품화는 대중적 기반의 확대와 동시에 통속화라는 부정적 현상을 몰고 오기도 했다.

 전세계를 휩쓰는 팝음악의 거대한 흐름 앞에서 현대의 다양성과 빠른 변화속도를 담아낼 국악형식의 개발이 앞으로의 숙제이다.<김희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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