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국가든 안방의 총아인 TV는 항상 대중의 우상인 스타를 배출한다. 지난 1일 피살된 국영 오스탄키노 방송의 차기 사장으로 내정된 블라디슬라프 리스티예프도 TV 스타였다. 지난 9일 그를 기리는 대규모 집회가 열렸는가 하면 그의 무덤에는 추모객이 줄을 잇고 TV는 아직도 추모방송을 계속하고 있다. 그를 잃은 충격과 분노를 무마키 위해 보리스 옐친대통령도 모스크바시 검찰 및 경찰 책임자를 해임하고 범인체포에 총력을 기울이도록 지시했을 정도였다.
구소련시절 브즈글라드(시각)라는 시사프로를 맡아 당시로는 성역이었던 부정부패, 마약, 섹스등을 다뤄 국민들에게 카타르시스를 느끼게했던 그는 타고난 방송인이었다. 그는 또 퀴즈프로의 사회자로 정치혼란에 염증을 느낀 국민들에게 웃음을 안겨줬다. 각종 시사대담프로에서는 날카로운 질문과 탁월한 문제의식으로 국민의 대변자 노릇을 했다. 한마디로 그는 미국 CNN방송의 래리 킹과 같은 존재였다. 최근 한국에서 드라마 「모래시계」가 시청자들을 붙들어맺듯이 러시아인들도 그의 프로그램을 보기 위해 귀가를 서둘 정도였다.
소련붕괴이후 러시아인들은 규제가 완전히 풀린 TV에 흥미를 갖게 됐고 그는 이를 간파, 국민들의 정서에 맞는 프로그램을 연속 개발해 히트를 계속했다. TV의 높은 시청률에 힘입어 광고업계는 너도나도 TV로 몰려들었고 결국 TV의 광고시장은 「복마전」이 되어 버렸다. 이를 개혁하려던 그는 38세의 젊은 나이로 러시아 방송사에 새로운 장을 열려다 비명횡사하고 말았다.
리스티예프가 묻힌 곳에서 몇 미터 떨어진 곳에는 80년대 반체제 시인이자 가수였던 블라디미르 비소츠키가 우연히도 잠들어있다.
우상을 잃은 러시아국민들은 민주주의의 좌절을 맛보고 있다. 그리고 『비정상인 나라에서 비정상적인 말은 오히려 정상적』이라는 극우 민족주의자 지리노프스키의 궤변에 귀를 기울이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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